[공존의 강, 희망의 강] (21)유럽(4>-스페인 빌바오시 구겐하임미술관

입력 2012-07-19 07:34:40

먹고살기도 힘든데 공장도 아닌 미술관?

번영을 누리던 도시가 목숨 줄을 놓을 지경이었는데 다시 살아났다. 살아난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과거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리는 도시가 됐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전세계 도시들이 벤치마킹을 하러 온다. 그러다 보니 인구 40만 명인 이 도시는 늘 외국인들로 넘쳐 난다. 호텔은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방을 잡을 수 없다.

기자가 이 도시에 들른 5월 말도 그랬다. 호텔에 가니 예약이 잘못돼 방이 없었다. 수소문을 해서 방을 알아보는데 20분을 더 가면 대체로 방 여유가 있는 허름한 호텔 하나가 있단다. 어쩔 수 없이 스위트룸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빌바오가 기사회생한 가장 큰 요인은 강을 통한 문화와 예술의 접목. 그중에서도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한 것이 결정적 동기가 됐다.

각종 공장 폐수와 생활 오수로 썩어가던 강을 살려내고 그 주변에 미술관과 음악당, 체육시설을 지었더니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1990년 도시를 살릴 방도를 고민하던 빌바오시청에 뉴욕의 구겐하임재단이 유럽 분관을 지을 계획이라는 정보가 날아들었다.

구겐하임재단은 먼저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이탈리아 베니스에 미술관 건립 계획을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구겐하임 측이 건립 비용 부담을 요구했기 때문. 1980년대 후반부터 산업도시를 문화에 접목시키려던 시도를 하던 빌바오로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1991년 바스크 자치 정부와 비스케이야 주 정부 및 빌바오시 관계자들이 뉴욕으로 날아갔다. 미술관을 빌바오에 건립해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빌바오란 도시는 문화'예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도시였기에 미술관 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빌바오시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건축비용에다 부지 및 진입도로까지 완벽한 미술관을 제공하겠으니 구겐하임 측은 이름만 내걸어달라는 것.

수차례의 만남을 통해 미술관 건립 의사가 확고하다는 것을 확인한 구겐하임재단이 마침내 빌바오 입성을 결정했다.

하지만 난관은 국내에 있었다. 시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 산업이 쇠퇴해서 먹고살기도 빠듯한 판에 무슨 미술관이냐는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살 수 있는 길이 미술관 유치에 있다고 판단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밀어붙였다. 연일 반대 시위가 일어났지만 정부 당국의 의지는 확고했다.

5월 24일 빌바오시청에서 만난 이븐 아레소 기술담당 부시장은 "만약 주민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쳤다면 구겐하임 미술관은 유치하기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의 95%가량이 반대했다고 기억했다.

시민들의 절대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유치를 결정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992년 발족한 '빌바오 리아 2000'이 이 작업을 주도했다. 빌바오시가 땅을 제공하고, 바스크 자치정부 및 비스케이야 주정부가 각각 50%씩 자금을 분담하기로 결정했다.

빌바오시는 땅 값을 제외한 건축 및 주변 경관 조성과 미술품 구입에 든 비용이 1억3천300만유로(EU통합전 스페인 화폐로 240억베세타)라고 밝혔다. 이 중 건축비는 8천500만유로, 3천600만유로는 유명 작품들을 구입(이 돈은 이후 6천만유로로 증가)하는 데 썼고, 1천200만유로는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작품을 빌려오는 데 사용했다.

구겐하임재단으로선 한 푼도 안 내고 유럽에 최신식 미술관을 지은 것이다. 요즘이야 많은 국내외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무상으로 부지를 제공하고 세제 및 금융 지원까지 하고 있지만 당시로선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미술관 유치가 가능했던 것은 그전부터 도심 재개발에 대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 특히 네르비온 강을 중심으로 한 개발 프로젝트가 도시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어렵게 해서 미술관 문을 열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빌바오 도심 문화예술 유지 기관인 '빌바오 인터내셔널'의 홍보담당자인 마리아 블란코(여) 씨는 "누구도 예상 못한 성과가 첫해에 발생했다"고 당시의 감격을 전했다. 심지어 미술관을 짓자고 주장했던 실무진들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개관 첫해(1997년 11월~1998년 10월) 바스크지역 GDP가 1억4천400만유로나 증가했다. 투자 비용을 상쇄하고도 1천100만유로가 남은 것. 개관 10년 만인 2007년 GDP는 2억4천300만유로가 증가했다. 개관 첫해 1년간 135만 명이 미술관을 찾았다. 이후 조금 줄기는 했지만 매년 95만~105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온다. 기자가 이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빌바오를 비롯한 바스크 자치정부 관할구역에선 GDP 상승분을 계산할 때 당일치기로 다녀간 사람들은 제외하고 하루 이상 지역 숙박업소에 묵은 관광객들만 계산한다. 이랬으니 당일 관람 후 다른 지역으로 간 사람들까지 합하면 투자 효과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 미술관이 인기를 끄는 것은 건물의 특징도 한몫을 한다. 아랍 사람들은 이 미술관을 '바라카'(운이 좋은 건물)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중동의 돈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건축을 할 때 입지와 미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빌바오에서 글'사진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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