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씨·생활권 서로 다르지만 농사철엔 '3도 품앗이'
◆삼도(三道) 마을
정감록에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소개될 만큼 뛰어난 자연경관과는 달리 세상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삼도 접경마을은 행정구역과 말씨, 생활권은 달라도 한 지붕 세 집 살림을 사는 곳이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충북 단양군 의풍리,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가 한데 어우러진 삼도(三道)마을.
최근 웰빙바람이 몰아치면서 이곳도 외지인들이 들어와 팬션과 현대식 건물을 짓는 바람에 옛 정취는 쉽게 찾아 볼 수는 없다.
영주 남대리 임재월(73) 씨는 "말이 강원도, 충청도로 나눠졌지 대대로 한 가족 같이 돕고 살아왔고, 지금도 농사철이면 3도 사람이 모여 품앗이로 정을 나누고 있다"면서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대도시와 충청도, 강원도 등에서 온 낯선 사람들의 왕래도 잦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영주 부석면 소재지에서 남대리'임곡리 방향으로 소백산 마구령을 향해 굽이굽이 펼쳐진 산길을 따라 10여 분간 올라가면 백두대간 마구령(해발 820m)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한숨을 돌리고 원시림 사이로 개설된 내리막 길을 따라 또 10여 분간 가면 주막거리다. 이곳부터 경북의 끝자락 남대리가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2009년 마구령에 폭 4m의 아스콘 포장도로가 개설되면서 '고속도로(?)가 뚫렸다'고 했다.
삼도마을은 충북 의풍리를 중심으로 북쪽은 강원도 와석리, 동쪽은 경북 남대리가 자리하고 있다.
◆애환과 추억이 어우러진 마을
삼도마을은 3개 도로 나눠졌지만, 이곳 사람들은 모두 도 경계를 넘나드는 삶을 살고 있는 정겨운 이웃이다. 삼도마을은 오랜 세월 바깥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며 교통불편과 행정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1998년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해 3개 도의 시'군이 도계지역 공동개발이란 취지로 '행정교류협의회'를 결성해 뭉치면서 인'물'행정적 교류가 활발해졌다. 특히 때묻지 않은 청정지역이란 입소문이 퍼지면서 귀농'귀촌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 것이다.
영주 남대리 임수경(56) 이장은 "1960년대 화전민 이주정책 이후 주민들은 떠나고 마을은 피폐해져 35가구에 60여 명에 불과했다"며 "최근 5년 사이 웰빙 바람을 타고 대도시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인구는 60여 가구에 120여 명으로 늘었고 가옥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통신'전기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전화료는 경북 영주, 전기료는 충북 단양, TV수신료는 강원도에 납부하기도 했다. 지금도 위성방송이 아니면 영주시 부석면 감곡'마락'남대리 주민들은 강원도 강릉방송과 영월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2010년 폐교된 영주 부석초교 남대리 분교에는 임태웅(4년) 군이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다. 부석초교 교사가 아침에 남대리로 들어오면서 임 군을 태워 남대분교에서 공부를 마친 뒤 다시 집에 태워주고 부석으로 넘어간다. 남대분교는 그야말로 교사 1명, 학생 1명인 소박한 공부방이다.
남대리 끝자락엔 도 경계를 알리는 표지석이 들어서 있다. 작고한 이의근 전 경북도지사가 1996년 "도 경계를 소흘히 해서는 안된다"며 충북 단양군 의풍리와 강원도 영월군을 잇는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도 경계 지점에 사업비 2천만원을 들여 300여 평 규모로 소공원을 조성한 것. 여기에 도계 표지석(3×4.5m)과 조경시설도 설치했다. 지금은 오가는 길손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도계 표지석 오른쪽 어래산 기슭에는 '파란 눈의 스님'으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현각 스님이 주지로 있었던 곳으로 유명한 현각사가 있다. 2001년 4월 문 열었지만 고풍스런 사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첩첩산중이지만 신도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역사가 서린 마을
남대리를 중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대천은 경북 땅인 남대리에서 충북 땅 의풍리를 거쳐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옛날 조선의 임금이 '팔도를 거쳐온 물을 다 먹어야 팔도를 고루 다스릴 수 있다'고 해서 남대리가 충청도가 아닌 경상도가 된 연유이다.
박석홍(58'학예연구원) 영주 소수박물관장은 "이곳 삼도마을 중심에는 어래산이 있는데, 궁궐터도 남아 있다"며 "고구려 장수왕과 신라 내물왕, 소지왕이 전쟁을 하기 위해 이 마을을 찾았고, 고려 공민왕은 몽진, 조선 단종은 영월 청룡포에서 순흥에 유배됐던 금성대군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전했다.
남대리는 울진'봉화'영주'단양'영월을 오가는 보부상과 방물장수들의 길이었고 군사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천민집단 부락이었고 군마용 말을 키우던 장소이기도 했다. 고종 때 순흥부자 만석군 김자인댁 신시부인이 마락리에서 키우던 말 180필을 사서 국가에 헌납해 고종 황제로부터 정3품 부인 칭호인 '정경부인' 칭호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박 관장은 특히 "충북 의풍리와 강원 김삿갓면은 순흥도호부에 속했던 곳이다. 조선 세조(1457년) 때 단종복위 실패로 순흥도호부가 폐부되면서 나눠졌다가 숙종9년(1683년)에 명예를 회복했지만 강원도 태백과 울진 일부, 단양 영춘면의 땅은 회복하지 못했다"며 "일제 때인 191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원히 갈라서게 됐다"고 말했다.
박 관장에 따르면 조선시대 왜구에 의해 불탄 영주 부석사를 중수할 당시만 해도 순흥도호부 부사가 명을 내려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백성들을 모아 목도를 해서 중수에 필요한 나무를 실어 나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지나 강원도 영월군 와석리에 가면 방랑시인 김립(속칭 김삿갓)의 묘가 있다. 묘 옆 운막에서 만난 현대판 김삿갓 최상락(문화관광해설사) 씨는 "이곳은 10승지의 삼풍지(단양의 의풍, 예천의 은풍, 부석의 인풍)가 있는 명당이다"며 "여기를 다녀간 사람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털어버릴 수 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삿갓 묘역에서 김삿갓 주거지 유적까지는 1.8km. 충청도와 강원도를 아홉 번 넘나들어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축지법을 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 발에 충청도, 두 발에 강원도 등 식으로 도계를 넘나들어야 김삿갓 주거유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김삿갓 박물관은 경북 청송에서 출발한 '외씨버선길'의 도착지점이다.
◆활발한 인적·물적교류
도 경계지역에 위치한 시'군 간 인적교류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영주시청과 영월군청에 근무하던 남녀 공무원 3쌍이 도계를 넘는 사랑의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2000년 영월군청의 여직원 엄혜정 씨가 영주시청의 조한철씨와 결혼한 것을 비롯해 영월군청에 근무하던 총종한 씨와 김태원 씨가 영주시청의 여직원 이재숙'권명숙 씨와 잇따라 백년가약을 맺었다.
또 3도 접경지역 연계개발사업(교통망'역사문화유적권'특산물)을 추진, 3도 도계 도로 확장 및 포장공사를 완료했고, 영월군의 김삿갓 계곡과 단양군의 온달산성, 영주시 부석사를 연결하는 관광벨트가 구축됐다. 특히 영주시는 단양군'영월군과 공동으로 관광벨트 구축해 소백'태백산권 종합 관광안내도 공동 제작'배포, 단종문화제, 소백산철쭉제, 풍기인삼축제 등 주요축제장 농'특산물 판매 교류전도 펼치고 있다. 삼도접경지 마을 주민체육대회도 해마다 돌아가면서 열고 있다.
강원도 영월군청의 서인석(48) 김삿갓문학관장은 "행정교류회가 발족한 뒤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만 김삿갓묘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5만5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며 "삼도체육대회를 통해 마을 주민들 간 교류도 더욱 돈돈해지면서 인정이 넘쳐나고있다"고 말했다.
조윤성(71'영월군 김삿갓면) 씨는 "예전부터 이 마을은 한동네였다. 지금도 마을마다 번영회가 있지만 항상 같이 모여 청소와 체육대회도 하고 모임도 갖는다"면서 "예전 차가 없을 때는 방물장수들이 다니며 중매를 서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소백산을 넘나드는 도로(폭4m)가 2009년 9월 '3도 도계 도로 확포장 공사'로 개통은 됐지만 경북 구간은 소백산이 가로막혀 여전히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이곳에 경상북도와 영주시가 소백산을 관통하는 마구령터널 공사(2.5km)를 준비 중이다.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설계비 5억원이 반영돼 기본 및 실시설계가 발주됐다. 터널 공사가 마무리되면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 방면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 선비촌, 소백산 등을 찾는데 기존 1시간 30분이던 시간이 30분대로 단축돼 지역 관광산업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주영 영주시장은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자연모습과 역사는 하나다"며 "낙후된 면도 있지만 가장 경북적이고 가장 충북적이고 가장 강원도적인 발전이 이뤄지도록 3개 시'군 간 민간차원의 교류를 활발히 벌일 계획이다"고 말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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