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년 '숙성' 깃든 전통건축물…빨리빨리 '속성'으로 어떻게 살려
지난달 경상북도가 선정한 건축목공 부문 최고 장인에 오른 김범식(70) 한국전통건축연구원 원장. 그는 전통건축물을 복원하고 수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도편수(대목장)다. 김천 직지사 극락전, 청도 운문사 관음전 등 그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전통건축물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장인 정신으로 퇴락해 가는 전통건축물을 되살려 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3'1절 행사에서 건설환경근장을 받았고 대한명인회는 그를 명인으로 추대했다. 또 2008년에는 한국인물연구원이 선정한 '한국현대인물열전 33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전통건축의 맥을 잇기 위해 50여 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를 만나기 위해 경산시 자인면에 있는 한국전통건축연구원 공방을 찾아갔다.
◆소목장 아들 대목장 된 사연
김 원장은 충남 서산에서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문'장롱'책상 등 목가구를 제작하는 목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그의 놀이터는 나무향 가득한 목공소였다. 그곳에서 대패질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하지만 그는 목수일이 자신의 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김 원장이 목수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군복무를 마친 22살 때다. 밥벌이를 해야 할 나이가 되자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 목수일이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진학은 꿈도 못 꾸었습니다. 20살 넘으면 취직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대였기 때문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목수일을 선택하게 됐죠.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보다 친숙한 목수일을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김 원장은 목수일을 배우기 위해 지인의 소개로 김덕희 선생 문하로 들어갔다. 김덕희 선생은 인간문화재 최기영'전흥수 대목장을 길러 낸 스승으로 전통 사찰 건축의 명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 "1964년 김천 직지사 박물관(청풍료) 신축 현장에서 김덕희 선생님과 아들 김윤원 선생님을 만나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일반 목수일 대신 전통건축 기술을 배우게 된 셈이죠."
그는 전통건축일은 무척 고됐다고 했다. 지금처럼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까닭에 늘 몸이 천근만근이었다는 것. "요즘에는 기계를 이용해 혼자서 나무를 자르지만 옛날에는 커다란 톱을 들고 두 사람이 밀고 당기기를 수십 번 해야 겨우 나무 하나를 잘랐습니다. 기계가 보급되면서 일손을 많이 덜었지만 그때는 사람 손 안 가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중노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전국을 떠돌며 일을 해야 하는 까닭에 객지 생활도 신물이 났습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죠.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기술을 배우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고 했다. "옆에 앉혀 놓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도제식으로 기술이 전수되다 보니 심부름을 하면서 기술을 배워야 했는데 눈과 손이 빠르지 않으면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목수일을 접하며 자란 것이 일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김덕희'김윤원 선생 문하생으로 전통건축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 받은 김 원장은 1960년 말 최고 대목장으로 꼽히던 조원재 선생을 만나면서 또 한 번 전통건축에 눈을 뜨게 됐다. "창덕궁 후원 수리 공사를 하면서 조원재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조 선생님을 만나면서 제대로 된 도면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면'측면'평면 등 여러 가지 도면을 만든 뒤 공사를 추진하지만 과거에는 평면 도면 하나만으로 일을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조 선생님이 평면도뿐 아니라 단면도까지 만들어서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도면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김 원장은 조 선생의 제자인 이광규 선생을 따라 진주 촉석루 보수 공사와 불국사 복원 공사 등에 참여하면서 도편수가 되기 위한 경험과 기술을 차근차근 익혀 나갔다.
김 원장은 오늘날의 자신을 만든 것은 훌륭한 스승들이라고 했다. "제가 복이 많아서 당대에 내로라하는 스승님을 모두 모셨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제가 존재할 수 없죠. 그리고 손재주와 눈썰미를 물려 주신 아버님의 존재도 제가 대목장이 되는 데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130여 개 문화재 및 건축물 수리'복원'신축
김 원장은 1977년 목공 분야 문화재 수리 기능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통건축물을 되살리는 일을 시작했다. 목수일을 배우면서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던 그가 대구경북에 터를 잡은 것도 이때쯤이다. "부산에서 한 2년 정도 살았고 서울에서도 한 2년 정도 살았습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것도 힘들고 대구경북에 사찰 등 전통건축물이 많다 보니 정착을 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난 곳은 충청도이지만 정착해서 산 세월을 따지면 대구경북이 실질적인 고향인 셈이죠."
그는 지금까지 전국 130여 개의 문화재와 건축물을 수리'복원'신축했다. 1978년 복원된 부산 동래읍성 동장대'서장대를 비롯해 김천 직지사 종각'요사채(복원), 청도 운문사 회성당'문경 봉암사 극락전(보수), 합천 해인사 조사전, 강화 전등사 극락전, 무안 미륵사 대웅전, 수원 봉녕사 향하당, 대구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신축) 등 전국의 유명 건축물들이 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그 공로로 그는 한국건축가협회상(2008년), 문화재청 공로상(2009년), 국무총리 표창(2011년)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상과 찬사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목수라는 것이 이유였다. "소문난 명의도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건축물은 수천 년 동안 전해 온 우리 민족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제게 주어진 상에는 앞으로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시간
김 원장은 '빨리빨리'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빨리빨리' 문화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원동력이 되었지만 전통건축과는 궁합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 선조들은 집 하나를 짓는 데도 몇 년을 투자했습니다. 지금은 집 지을 때 사용하는 나무를 자연건조 방식이 아니라 인공건조 방식으로 말립니다.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말린 나무는 변형이 잘 되지 않지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인공건조 방식으로 말린 나무는 많이 터집니다. 자연건조가 숙성이라면 인공건조는 속성인데 속성이 숙성의 깊은맛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라고 했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일수록 옳은 건축물을 지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과거에 비해 건축 기술은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건물 수명은 오히려 짧아졌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건축물은 천 년을 버티지만 요즘 지어진 건물은 50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짧은 시간에 건물을 올리다 보니 생겨난 문제입니다."
특히 김 원장은 전통건축물을 수리'복원하는 데 '빨리빨리' 문화가 접목된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문화재는 주문 제작해서 만들어 내는 상품이 아닙니다.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투자해야 제대로 된 수리와 복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공사 기간과 예산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에 옷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에 사람을 맞추는 격입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보'보물을 모형물로 제작
지난해 열린 '2011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서 '도편수 김범식의 우리 건축 모형전'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보 1호인 남대문과 보물 1호인 동대문을 비롯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건축물을 정교하게 축소한 모형 18점을 전시한 우리 건축 모형전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각국 대사, 외신 기자들도 다녀갈 만큼 성황을 이뤘다.
김 원장이 10여 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여서 하고 있는 작업 중 하나가 전통건축물 모형을 만드는 일이다. 그는 지금까지 국보 18호 부석사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308호 풍남문, 국보 5호 봉정사 극락전, 국보 49호 수덕사 대웅전, 국보 52호 해인사 장경판고문, 보물 819호 덕수궁 중화전, 보물 1563호 동화사 대웅전 등 39점의 모형을 제작했다. 실물을 10분의 1 또는 5분의 1 크기로 축소해 만든 모형은 가로'세로'높이가 1~3m에 이른다. "큰 것을 만드나 작은 것을 만드나 품은 똑같이 듭니다. 오히려 작은 모형의 경우 세밀한 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 까닭에 신경은 더 많이 쓰입니다. 모형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3~6개월 정도 소요됩니다. 여력이 되는 한 꾸준히 모형을 제작할 생각입니다."
김 원장이 모형을 만드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을 보전하는 일과 맥이 닿아 있다. "비록 모형이지만 문화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좋은 수단도 됩니다. 올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장을 찾았습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국보와 보물을 찾아다니면서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를 모형으로 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우리 문화재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우태욱기자 w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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