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황금동 복개도로 인근 골목 안에 참하게 생긴 예술인 부부가 운영하는 실내포장마차가 있다. 남자는 성악가, 여자는 연극인이다. 두 사람 모두 경력이 탄탄하다. 남자는 지역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테너로, 이탈리아의 밀라노, 꼬모 등지에서 유학경력만 10년이 훌쩍 넘는다. 여자는 대구 연극계의 중견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출연작은 공지영 원작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로 기억이 난다.
저녁이 되면 이 실내포장마차에는 가난한 예술인들이 모여든다. 고등어 굽고, 연탄불고기에 닭똥집을 안주로 한잔씩 하다 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를 잊지 마세요' 같은 이탈리아 가곡 두어 곡 정도는 들을 수가 있다. 이웃으로부터 시끄럽다고 신고를 당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리 상관하지 않는다. 대화는 대개 예술인들의 근황에 관한 얘기를 곰비임비 나누는데, 간혹 예술계의 현실에 대한 신세타령이 이어지기도 한다.
한때 청운의 뜻을 품고 유학을 떠났던 젊은 예술인들이 고향에 돌아와 본업을 떠나 있는 것이 비단 이 부부 경우만은 아니다. 와인 전문점을 차려 '소믈리에'를 하거나, 커피 체인점에서 '바리스타'를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유학을 갔다 돌아오지 못하고 현지에서 관광안내업으로 정착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대구 출신만 수백 명에 달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왜 그럴까. 개인 사정은 알 도리가 없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설 무대가 없다는 것이다.
오늘도 술자리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주로 문화예술계의 '파이'가 너무 작다는 것이다. 대구문화재단이 있지만 꼴 난 기금이자를 가지고서는 조직운영만 해도 벅차다. 그러다 보니 중앙에서 내려오는 문예진흥기금에 수백 개의 단체가 목을 매고 있다. 그들을 다 만족시켜 줄 도리가 없다. 잘게 잘게 쪼개어 주다 보니 어느 한 단체도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어느 소프라노는 '죽을 때까지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며 대구문화재단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바로 '예술가들의 파이를 늘리는 것'이라고 울뚝밸을 내뱉었다.
며칠 전 대구시 체육진흥과가 개설한 계좌에 무려 510억 원의 뭉칫돈이 들어왔다. 바로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잉여금이다. 당연히 체육대회를 흑자로 치르고 남은 돈이니, 체육 분야에만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조직위 정관 44조 규정 역시 '법인을 해산할 때 잔여재산은 대구시에 귀속하고, 체육 발전을 위해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을 경직되게 해석하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이었다는 이번 대회가 메달을 많이 따서일까. 그것은 아니다. 육상 불모지인 우리로서는 어차피 정규 종목의 메달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여러 분야,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 정성을 쏟았다. 조직위는 조직위대로, 대구시는 대구시대로 '문화행사기획단'을 따로 만들어 심혈을 쏟았다. 개회식, 폐회식, 세계육상연맹 총회, 전야제는 물론 마라톤 루프코스를 따라 온갖 공연이 이어졌다. 도심 축제도 거의 환상적이었다. 가히 '문화예술대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러니 이 잉여금을 '규정에 따라 체육 분야에만 써야 하고 문화예술에는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명토 박을 일은 결코 아니다. 문화예술계에도 당연히 절반의 몫이 있다. 무릇 문화는 모든 것을 담는 그릇이다. 따지고 보면 체육도 문화고, 시민도 문화다. 그러니 '잉여금의 상당액을 대구문화재단 기금으로 출연해야 한다'는 김정길 대표의 주장은 매우 정당하다.
물론 대구문화재단에서도 대회 잉여금 등속만 바라보고 평소 '파이'를 키우는 일에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비유가 속되지만, 노름판은 판돈이 커야 한다. '기금을 낼 사람도 없고, 또 모아봐야 이자율이 너무 낮다'는 말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1천억 원 이상의 기금을 모아 이자율을 경매에 부친다면 과연 그게 적은 돈일까.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조어처럼, 문화예술 하나를 키우려면 온 시민이 나서야 한다.
노병수/달서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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