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엄마의 일생/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때/감꽃 아래서/양떼목장

입력 2012-07-13 07:28:32

♥수필1-엄마의 일생

엄마는 오랜 직장생활에 팔이 아파서 일을 그만두었다. 때마침 아버지가 타지(他地)로 발령이 나서 챙겨야 할 일이 줄어 팔 치료도 하면서 편안히 쉬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둘째 딸이 태어나면서 엄마께 맡기려고 친정으로 들어왔다. 이때부터 엄마의 고난은 시작된 것 같다.

연이어 동생이 또 딸을 낳았고, 그리고 지난주에 딸 쌍둥이를 낳은 언니가 엄마 집에서 몸조리하고 있는 중이다. 엄마는 갓난아기 둘을 목욕시키고 빨랫감을 한가득 담아 욕실로 가면서 허리를 쫙 펴지 못한 채 꾸부정한 모습을 하고 계셨다. 아직도 팔이 많이 아픈지 양쪽 팔을 번갈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손녀 다섯을 거두며, 아무리 딸이 좋은 세상이라지만 재미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골목에 나가면 "쌍둥이 할머니"로 통한다면서 손녀를 예뻐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손자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엄마의 휴식기는 언제일까?

"너희들 다 키워 놓고 훨훨 날아 다닐 거다"라고 했던 엄마. 너무 오래되어서 날개가 녹이 슬었나? 아직도 날 수 없는, 아니 날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의 겨드랑이에는 작은 날개가 있을까 팔을 한번 슬쩍 들어본다.

이 더위에 땀 많은 우리 엄마, 굽이굽이 넘어오신 세월처럼 매끈하지 않은 등에도 땀이 흥건히 배어 있다.

저 땀이 언제 식으려나! 세탁을 거들어 빨리 끝내고 맛난 것 사드리려고 집을 나섰다.

막상 둘이서 집을 나섰지만, 서툰 남편에게 두 딸을 맡긴 것과 쌍둥이와 함께 누워 있을 언니가 자꾸 눈에 밟힌다. 엄마도 그런 모양이다. "고마, 사들고 들어가 집에서 먹자."

돼지족발이 비닐봉지 안에서 덜렁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최윤서(대구 서구 내당동)

♥수필2-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때

아침이면 어머니는 나에게 일러주신다. "오늘은 아무개 집에 모내러 가는데 거기로 밥 먹으러 오너라. 알았냐?" "네~~~~~에."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모내는 논을 찾아간다. 점심때가 되면 동네 여인들이 함지박에 밥을 푸고 채반에 반찬을 가득 담아서 머리에 이고 줄지어 오신다. 그러면 모내기를 하시던 어른들은 허리를 펴시며 논에서 나와 흐르는 도랑물에 대충 씻고 논두렁에 둥그렇게 앉는다.

뜸이 푸욱 든 하얀 쌀밥을 그릇 그릇에 담고, 도라지 무침, 산나물 무침, 도토리 무침, 겉절이에다 꽁치 조림을 얹어준다. 산에 있는 떡갈잎에다 얹어 준 꽁치 반 토막은 그 어느 맛과 비교할 수 없다. 아주 싱싱한 꽁치를 큰 냄비에다 조린 것인데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후식으로 가마솥 누룽지가 주어진다. 큰일 때면 가마솥에다 밥을 하는데 밥을 담고 밑에 남는 누룽지에다 칼로 가로세로 금을 그어 놓는다. 그리고 불을 살짝 때면 그대로 사각 누룽지가 일어난다. 그 누룽지를 논에 가지고 나오셔서 골고루 나누어 주신다. 바삭하고 노란 사각 진 그 누룽지가 그립다. 어른들은 뽀얀 막걸리를 마시고는 춤판도 벌이고 좀 쉰 다음 다시 모내러 논에 들어가신다.

우리들은 논두렁에서 뛰고 달리고 놀다가 해가 서산에 걸리면 재잘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산골짜기에는 노래와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 펴지고 집집마다 저녁을 짓는지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김명수(대구 달성군 현풍면)

♥시1-감꽃 아래서

오월 밤 은하 물에 밤새 놀던 싸락 별이

파름한 속잎 사이 젖 보채듯 파고들어

고향집 뒤 감나무에 금빛 별꽃 노오랗다

긴 봄날 실에 꿰어 허기 채운 꽃목걸이

희미한 웃음 지며 툇마루에 등 기댄 채

막내딸 보담던 눈길 이슬 맺힌 아버지

이 봄도 남새밭에 토닥토닥 지는 감꽃

아련히 떠오르는 내 유년의 그림 한 점

밭이랑 사이사이로 옛 추억을 줍는다

조정향(대구 중구 대봉1동)

♥시2-양떼목장

산등성이 넓은 초원에

양 떼들 무리 지어 풀을 뜯는다

거친 풀 베어낸 자리

파릇파릇 돋아난 잎을 골라

입술 실룩거리며 먹는다

배고픈 시절 못 사 먹어본

김이 나는 찐빵 맛인가?

손자 불고기 먹는 입처럼

참, 맛있게도 먹는다

구경꾼 큰소리에

한눈팔지 않고

먹기 시합이라도 하듯이 열심이다

뭉친 털옷 입은

궁둥이에 유리관 꽂고

양쪽 옆에 예쁜 젖꼭지 달고

말 닮은 얼굴

불강아지 같은 얼굴 이쁘다

순한 양들

풀 뜯는 초원에 누워

보리피리 한참 불고 싶어라

편재영(김천시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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