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제2부>] 10. 문명의 통로를 찾아

입력 2012-07-11 07:59:11

40도 넘는 혹서의 땅…지금은 중앙아시아 횡단 대동맥 건설로 각광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대형버스인데도 휘청휘청 흔들렸고 유리창에서는 차르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며 이동을 했다. 아스팔트 도로 위로 모래가 깔리며 우측에서 좌측으로 물 흐르듯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길 옆에 모래 언덕이 생겼다. 아스팔트 포장은 되어 있었으나 여기저기 파괴되어 비포장 길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이번 여행을 위한 교통편은 거의 버스를 이용했다. 이동하는 날은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을 줄기차게 달리고 또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가로질러 갈 때는 엄청 고역이었다. 다만 오랜 옛날부터 이 길을 다녔을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그 의미에 스스로 감동하며 위로를 받을 수밖에 없다.

40℃를 넘는 혹서의 땅, 사막에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앙아시아 허리를 횡단하는 대동맥이 될 것이다. 공사 차량 중 우리 지역의 건설업체 ㅍ건설의 글씨가 보이는 중장비도 보였다. 실크로드 공사로 한국 토목기술의 우수성이 해외에 알려지는 현장을 목격했다. 또 하나의 위로로 충분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시작한 중앙아시아 여행은 역사도시 히바와 부하라를 거쳤다. 이제 이 길을 따라 사마르칸트로 향한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실크로드와 함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막을 횡단하는 도중에 휴식과 교역을 위해 오아시스 도시들이 조성되어 있었다. 그것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은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 왔다. 동쪽은 한반도 경주에서 서쪽은 로마까지 동서교역로의 양쪽 끝에서 연결되어 왔으나 중앙아시아는 그 실크로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루트의 안정은 막대한 부의 축적을 가능케 했다. 그로 인해 쟁탈전도 치열했고 지금도 남아있는 화려한 건축물들도 세워지게 된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티무르 등 제국을 호령하는 인물들과 군대도 실크로드를 통해 오갔다. 알렉산더는 기원전 4세기, 약 10년에 걸친 동방원정으로 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저항하는 소그드인을 평정, 지금의 사마르칸트를 지배하고 그리스인들을 거주시켜 헬레니즘을 전파했다. 중국도 기원전 160년경 한무제의 지시로 장건이 13년에 걸친 긴 여정을 통해 서역에 관한 많은 지식과 문물을 가지고 돌아가 실크로드 발전에 큰 계기가 되었다. 7세기 초에도 중국은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을 통해 비단길을 통한 서역경영을 계속했다.

13세기 초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은 5년 간에 걸쳐 중앙아시아 원정에 나서 일대를 철저히 파괴했다. 특히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의 피해는 극심했다. 파괴가 있으면 건설이 따르는 것도 변증법적 질서. 몽골계 후손으로 태어난 티무르는 부근 국가를 차례로 정복, 대제국을 구축했다. 사마르칸트에는 칭기즈칸에 의해 파괴된 당시보다 더욱 화려하고 장대한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칭기즈칸은 이 길을 다니며 파괴했고 티무르는 이 길을 통해 기술자와 예술가들을 모아 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칭기즈칸이 도로까지 파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참제도를 더욱 튼실하게 하여 대제국의 소통을 도모했다. 따라서 칭기즈칸의 중앙아시아 지배 이후 실크로드는 동서교역로의 역할이 한층 더 강해졌고 사마르칸트를 비롯한 오아시스 도시들은 국제적인 커뮤니케이션의 거점으로 나날이 번창했다.

칭기즈칸이 죽은 후 중앙아시아는 우즈벡 민족이 실권을 잡았다가 제정러시아에 이어 소련이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실크로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사도로로 사용됐고 나날이 파괴되어 갔다. 그 후 1991년 중앙아시아 각국은 독립했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실크로드는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실크로드라는 명칭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19세기 독일의 여행가 리히터 호벤이었다. 근년 들어 역사탐방과 관광 붐에 따라 실크로드라는 호칭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비단이 가진 아름다운 이미지와 신비스러움에 세계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정작 현지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이 길은 침략자들이 군대를 끌고 오는 전쟁의 길에 지나지 않았다. 길의 맨 끝에서 바라보는 측과 그 길 중간에 있는 사람들 간에는 실크로드의 의미도 엄청 다를 것이 틀림없다.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가 걸었던 이 길에 서서 문명의 통로를 찾는 순례자는 언제나 시작하는 마음이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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