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펴낸 학생 저자들 "나도 작가다"

입력 2012-07-10 07: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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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학생들의 책쓰기 활동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가운데 경북여고 학생들이 출판된 책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안정은, 이채린, 이유미, 길효정, 앞줄 왼쪽부터 오지영, 최은정, 김예인, 최호정 양.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에 학생들의 책쓰기 활동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가운데 경북여고 학생들이 출판된 책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안정은, 이채린, 이유미, 길효정, 앞줄 왼쪽부터 오지영, 최은정, 김예인, 최호정 양.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어디까지 가봤니?"를 쓴 신명고 김지현(왼쪽), 김지원 양.
'내 친구 Mr. 케찹'을 출판한 경북예고 성나영, 여효주 양.

책쓰기 활동은 대구시교육청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다. 시교육청은 매년 학생들의 작품을 심사, 선정된 글은 출판비를 지원해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책쓰기에 참여한 학생들은 저마다 "글을 쓰는 데 자신감이 붙었고 진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9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는 정식 출판된 18권의 책이 선보였다. 지난해 책쓰기 교육 결과물 1천여 편을 대상으로 심사한 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들. 초등학생들의 동시부터 꿈을 담은 동화, 사춘기 청소년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에세이 등 소재와 형식도 다양하다. 시교육청 지원으로 책을 펴낸 경북여고와 신명고, 자비를 들여 책을 만든 경북예술고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화가 곧 인생이죠, 경북여고 소녀 작가들

"모든 세대가 함께 읽었으면 하는 동화책입니다."

경북여고 '곱게 쓰는 창작 동아리'(지도교사 전윤정) 2학년 회원 8명은 '인생은 동화다'라는 제목으로 9편의 동화를 묶어냈다. 아이들을 위한 것 뿐 아니라 세대를 넘어 함께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안정은 양은 '잃어버린 숫자를 찾아 떠난 슝슝이의 좌충우돌 모험기'라는 동화를 썼다. 어느 날 숫자가 없어져 버린 탁상용 시계 슝슝이가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숫자를 찾아 길을 나서는데 결국엔 주인이 여전히 자신을 아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는 내용. "힘겨워 하는 주위 친구들에게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쓴 글이에요.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출판된 책 속 동화들은 제법 산뜻하다. 각자 개성만큼이나 소재가 다양하고, 직접 그림까지 그린 학생도 있다. 하지만 머리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뒤따랐다.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모였음에도 새로운 것을 창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실감해야 했다.

각각 '우리가족'과 '고양이, 집 나가다'를 쓴 최은정, 오지영 양은 이미 다 쓴 글을 통째로 뜯어 고치길 반복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고 했다. '이름없는 음표'를 내놓은 이유미, '행복'을 쓴 이채린 양도 글쓰기가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진도가 제대로 나가질 않았어요. 글쓰는 데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실력이 모자란다는 걸 절감했죠."

'너에게로'를 쓴 김예인 양은 글을 쓸 시간이 넉넉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직접 삽화까지 그리다 보면 시계바늘이 종종 자정을 넘곤 했죠. 완성된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지만 좀 더 손을 봤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책쓰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코끼리 그랜의 여행'과 '나는 키가 작습니다' 등 두 편을 쓴 최호정 양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면서 제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돌아보게 됐어요. 또 메말랐던 감성이 동화를 쓰면서 살아난 느낌이에요."

'효주나비'를 적은 길효정 양의 꿈은 작가. 책쓰기 후 글쓰는 자세가 보다 진지해졌다고 했다. "예전엔 글을 끄적여도 혼자 읽고 말았어요. 하지만 책은 불특정 다수가 읽잖아요. 읽는 사람들의 입장, 생각을 배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아요."

◆대구를 알려드려요, 신명고 김지원, 김지현 양

신명고 2학년 김지원 양은 장래 박물관 학예사가 되고 싶어한다. 같은 학년 김지현 양은 활동적인 성격이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둘이 펴낸 책이 대구 곳곳을 둘러보며 쓴 '대구,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명고 책쓰기 동아리 '꿈뜨락애(愛)' 회원인 둘은 지난해 여름부터 틈틈이 작업한 끝에 책이 출판되는 기쁨을 맛보게 됐다. 책은 중구청 골목투어, 대구 근대역사관과 삼성상회 옛터, 달성공원, 망우공원, 팔공산과 앞산 등을 사전 조사하고 답사한 뒤 적은 글들로 채웠다.

주제가 둘의 취향과 잘 맞아 떨어졌지만 책쓰는 과정이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지원이는 지난해 여름 중구청 골목투어에 참여했던 것이 고역이었다고 전했다. "한창 더울 때라 뙤약볕에서 두 시간 넘게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게 쉽지 않더군요. 걷는 것도 힘든데 문화해설사의 설명까지 일일이 메모하며 다녀야 했으니까요."

지현이도 날씨 탓에 고생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겨울에 들렀던 팔공산도 기억에 남아요. 풍광이야 멋졌지만 너무 추워 혼이 났어요. 손이 얼어서 가져간 과자 봉지도 못 뜯겠더라고요."

답사와 지루했던 자료 조사 과정 속에서 둘은 인내심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의 관광 자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 것도 책쓰기를 통해 얻은 소득. 지원이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근대 골목이다. "볼거리가 없다는 말만 할 뿐, 왜 진작 가까운 곳부터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구에 이 같은 관광 자원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지현이는 기억에 남는 곳으로 망우공원을 꼽았다. "사실 너무 음침해서 머리속에 남는 곳이에요. 정리가 안 된 듯한 분위기인 데다 인적도 드물었고요.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할 듯합니다."

둘을 지도한 여은정, 라민지 교사는 이 책이 부담없이 읽기에 좋을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대구 관광 정보를 전달하는 책이라면 지루할 수도 있죠. 이 책은 정보 거리 외에도 사춘기 소녀들의 재치와 감성이 묻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친구를 만드세요, 경북예고 여효주, 성나영 양

대구시교육청이 지원하는 책쓰기 활동은 아니지만 별도로 책을 펴낸 학생들도 있다. 경북예고 미술과 3학년인 여효주(시각디자인 전공), 성나영(애니메이션 전공) 양이 그들. 단짝인 둘은 지난달 '내 친구 Mr. 케찹'이라는 그림동화책을 선보였다.

효주는 나영이와 취향이 비슷했던 것이 책쓰기로 이어졌다고 했다. "5월 중간고사가 끝난 뒤 지역 한 대학 입시설명회에 참가하기 위해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그 사실을 알았죠. 나영이는 동화책 수집이 취미이고, 저는 순수하면서도 간결해 잔잔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그림동화책이 좋거든요."

둘의 이야기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고교 시절 멋진 추억을 남겨보자는 생각에 직접 독특한 그림동화책을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주제 정하기. 한참 고민한 끝에 최근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학교폭력 문제를 다뤄보자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야기는 이틀 만에 완성했다. 외로운 소년 브레드와 케찹이 주인공. 브레드가 빵을 먹기 위해 케찹을 짜다 토끼 모양 그림을 그리며 친구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자 케찹이 살아 움직이며 브레드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브레드와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던 악동을 혼내주자 브레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고 친구도 생긴다는 내용.

동화책이다 보니 그림을 구상하고 표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야기가 효주의 몫이라면 그림은 주로 나영이가 맡았다. "일부러 공책에다 낙서한 것처럼 보이도록 그렸어요. 그림 배경은 공책처럼 보이도록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줄을 그어나갔죠. 색깔도 빨간색만 조금씩 썼습니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다만 이 동화를 읽고 학교폭력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책이 출판됐지만 둘의 계획은 그들의 우정처럼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다음에는 대학을 졸업할 때쯤 책을 다시 내볼까 생각 중이에요. 그 때는 더욱 멋진 책을 만들 수 있겠죠?"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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