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고 밝고 예리한… 짧은 시로 만나는 '감정의 생얼' 들

입력 2012-07-10 07:54:34

올해 책쓰기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똑똑한 학생들을 미리 고르지 않고 100% 희망자로 구성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희망자가 아니라 자신이 가고 싶은 동아리에 못 가 '튕겨온' 학생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책쓰기를 하자니 쉽지 않았다. 활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고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 무언가 적는 것은 아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책쓰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결국 가장 쉬운 길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바로 짧은 시 쓰기다.

학생들이 길게 쓰는 것을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길게 쓴 글에 진정성이 담기지 않는 것을 자주 보았기에 나는 차라리 짧게 쓰기를 요구했다. 길어봤자 대여섯 줄이면 마음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하다. '중간고사에서/ 1등을 했다/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안 믿는다/ 부모님께 자랑을 했다/ 놀리지 말라고 하신다/ 사실 나도 못 믿겠다.'(김성훈의 '1등')

기교나 운율 같은 것은 일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냥 중얼거림처럼, 혹은 수다처럼 쓰라고 했다. 어느 한순간 자신이 느낀 감정의 '생얼'을 그대로 적기만 하면 된다. 아이들은 낙서처럼 시를 쉽게 쓴다. 그러나 그 낙서 속에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진실들을 툭툭 뱉어 놓는다. '오늘도 욕을 했다/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미 버릇이 되어 버렸다/ 친구에게 욕을 했다/ 욕이 나에게 되돌아온다.'(이성훈의 '욕')

아이들은 세상을 정확히 본다. 아직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어제 했던 약속을 오늘 잊어버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어리고 순수하고 밝고 예리하다. 미완의 모습 그대로인 아이들의 시에는 그래서 울림이 있다. 울림은 때로 아프다.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새벽녘 이불 속에 누워/ 나는 왜 일어나는지 모르고/ 학교를 가고/ 집에 오고/ 꿈을 꾸지 않아도/ 똑같은 내일을 보곤 한다.'(정관우의 '꿈도 없이')

아이들은 책쓰기 시간마다 짧은 시 두 편을 쓴다. 서로의 글을 보고 같이 평가도 하는데 아이들이 좋다고 평하는 부분은 나도 좋은 부분이다. 우리는 계속 짧은 시를 쓸 것이다. 그것들을 모아 다듬고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그게 충분히 가능함을 이젠 안다.

이금희 대구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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