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 세계 최연소 도전 윤승철 씨

입력 2012-07-09 10:23:17

지구촌 오지서 외로운 사진과의 싸움 '인간승리'

지난달 완주에 성공한 중국 고비 사막 마라톤 참가 당시 윤승철 씨의 모습.
지난달 완주에 성공한 중국 고비 사막 마라톤 참가 당시 윤승철 씨의 모습.

"세계 최연소로 극지 마라톤 그랜드 슬램 도전에 성공하겠습니다. 3곳의 극지 마라톤은 완주했고 나머지 남극 마라톤도 자신 있습니다."

6일 대구를 찾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윤승철(23) 씨는 '세계 최연소 극지 마라톤 그랜드 슬램'에 도전하고 있다. 윤 씨는 남극 마라톤 대회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7일 김천에서 특별강연을 하기 전 대구를 찾았다.

세계 4대 극지 마라톤 대회는 사하라'칠레 아타카마 사막'중국 고비 사막'남극 마라톤이다.

윤 씨는 2008년 글쓰기 소재를 찾던 중 우연히 극지 마라톤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극지 마라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무조건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중학교 때 종아리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는 부상을 입고 걷기조차 힘든 상태였지만 극지 마라톤에 참가하겠다는 윤 씨의 의지는 확고했다.

2008년 여름부터 자취방 근처에 있는 서울 남산 산책로를 걷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극지 마라톤을 준비했다. 하루 3km 걷기부터 시작해 10km 달리기로 훈련 강도를 점차 높였다. 윤 씨는 대학 1학년을 마친 뒤 2009년 1월 해병대에 지원했다.

해병대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해병대 낙하산 부대에서 극한의 훈련을 받고 전역한 윤 씨는 지난해 10월 사하라 마라톤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사하라 마라톤에 참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군대에서 전역한 뒤 체력에 자신이 있었지만 내심 중도 탈락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무엇보다 400만 원이라는 큰 액수의 참가비를 마련하는 것도 문제였다. 윤 씨는 100여 곳의 기업에 직접 극지 마라톤과 자신을 홍보하는 자료를 만들어 보냈다. 답변이 온 기업은 2, 3곳에 불과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던 중 한 아웃도어 용품 회사에서 극지 마라톤에 필요한 장비를 모두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좋은 소식은 계속 이어졌다. 윤 씨가 재학 중인 동국대에서 참가비와 항공료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윤 씨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사하라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었다.

윤 씨는 "사하라 마라톤 출발선에 섰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나의 숨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고 말했다.

7일 간 250km를 걸어야 하는 사하라 마라톤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작열하는 태양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사막만이 윤 씨의 눈앞에 펼쳐졌다. 매 순간이 자신과 싸움이었다.

처음 참가하는 마라톤이라 시행착오도 많았다. 남들보다 1.5배의 식량을 싸갔던 윤 씨는 첫날 저녁 식량의 3분의 1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70대 노인과 여성들, 부상을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힘을 냈습니다."

사하라 마라톤을 완주한 그는 올해 3월 칠레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과 6월 중국 고비 사막 마라톤에서 완주했다. 그는 올 11월 남극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해 세계 최연소 극지 마라톤 그랜드 슬램에 도전할 계획이다.

현재 윤 씨는 남극 마라톤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남극 마라톤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많지 않아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참가비 마련도 해결되지 않았다.

윤 씨는 "친척들이 대구에 많이 살고 있어 대구는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며 "대구의 대학생들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아서 용기있게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항섭기자 suprem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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