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비 오니 빗길 조심하라는 전화였다. 전날엔 아침은 먹었는지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엔 뉴스를 보니 '핸드폰을 너무 오래 사용하면 화상을 입는다' 해서 걱정돼 전화를 하셨단다. 그러시며 "밥은 먹었냐" "우유 마셨냐" "약은 함부로 먹지 마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 "무슨 일 있으면 엄마에게 제일 먼저 연락해라" 등등 항상 하시던 말씀으로 쉬지 않고 걱정스레 긴 통화를 하신다.
전화의 목적은 '전화를 오래 하지 말라'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더니 "전화 오래 하면 화상 입는다고 뉴스에 나왔어. 끊자. 오빠한테도 전화해 줘야 된다. 오빠가 아침을 꼬박 챙겨 먹어야 하는데…. 아이고! 전화세 많이 나온다 끊자!" 무슨 말씀이신 걸까? 어머니의 걱정은 앞뒤 없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정말 어머니의 전화 목적은 긴 휴대폰 사용으로 화상 입는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의 전화 내용은 다양하면서도 결코 쉬지 않는다. "딸. 여름인데 원피스 사야지! 오빠하고 시간 맞춰서 날짜 얘기해줘~." 그리고 몇 분 뒤 전화가 온다. "언제 몇 시에 볼 거야?" 어머니는 만나는 날이 되기까지 그렇게 전화를 한다.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동지 등 달력에 있는 기념일에는 어김없이 전화를 한다. 가장 웃음이 나는 기념일은 어린이날이다. 시집, 장가갈 나이인 나와 오빠에게 매년 어린이날 전화를 한다. 아직 '어린이'라면서 말이다.
20대 초반엔 이런 전화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했던 말 또 하고 물은 것 또 묻고. 왠지 어머니의 전화는 딸을 못 미더워하는 잔소리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저녁 드셨어요?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비 오는데 빗길 조심해요."
그 알 수 없는 어느 시간 이후부터 어머니의 전화가 즐겁기 시작했다. 했던 말 또 하는 어머니가 어느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오빠와 만나 어머니와 통화한 이야기를 하면 오빠 또한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어머니의 안부전화를 받았다며 웃는다. 문득 알았다. 알려고 안 것도 아니고 이해하려고 이해된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의 전화는 일방적인 잔소리가 아니라 보고 싶다는 대화의 전화였다는 것을 말이다. 더우면 덥다고 비 오면 비 온다고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그렇게 자식 챙기는 일을 어머니는 쉬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일을 핑계 삼아 어머니는 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대화를 신청하셨다. 내일은 내가 먼저 아침 드셨냐고 전화해야겠다. 어머니도 알고 계실까? 딸이 조심스레 보고 싶다며 대화 신청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김하나(배우'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