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보다 힘든건 남편도 자식도 없는 외로움
"내 나이? 스물 다섯이지. 스물 다섯!"
기자가 홍순남(51'여) 씨에게 나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나이를 세 번이나 바꿨다. 처음에는 스물 다섯, 쉰 셋, 마지막에는 예순. 여태 굴곡진 삶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던 순남 씨는 이제 자신의 나이를 헷갈려할 정도로 몸과 정신이 약해졌다. 올해 3월 순남 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왔다. 하지만 병마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의 곁을 지켜줄 남편도, 자식도,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이다.
◆뇌출혈로 쓰러지다
25일 오후 대구의 한 대학병원 6층 병실. 순남 씨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침대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그때 마침 동생 홍순복(46) 씨가 들어와 누나를 불렀다. 간병인 4명이 돌아가면서 24시간 교대로 환자 8명을 돌봐주는 병실이기 때문에 동생 순복 씨는 막노동 일을 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병원을 찾는다. 찾아올 이도, 찾아갈 이도 없는 누나의 형편을 잘 알기 때문이다.
순남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은 올해 3월 11일 오전 9시쯤이었다. 순복 씨는 그날 아침 집에서 누나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갔을 때 누나는 이미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상태였다. 순남 씨의 병명은 뇌출혈. 그렇게 병원에서 최근 넉달 간 혈관조영술 등 머리를 여는 큰 수술을 네 차례나 했다. 머리카락이 1㎝ 정도 자란 그의 머리에는 아직도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수술 뒤 순남 씨는 점점 더 어린 아이가 되어 갔다. 한밤 중에 잠에서 깨 "목욕을 해야 한다"며 간병인을 조르기도 하고, 한참 어린 순복 씨에게 "오빠"라고 부르기도 했다. 순복 씨는 "평소 무뚝뚝했던 누나가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짠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외로움과의 싸움
순남 씨에게도 한 때는 가족이 있었다. 25년 전 순남 씨는 친언니의 중매로 포항에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남자는 뱃사람이었다. 1t짜리 배를 타고 포항 근처에서 고기를 잡아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하지만 순남 씨는 시부모와 극심한 갈등 때문에 힘들어했고 남편은 든든한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했다. 이혼이 '흉'처럼 여겨지던 그 시절 그는 속앓이만 하다가 여섯 살도 안 된 두 딸을 두고 집을 뛰쳐나왔다. 이혼한 딸은 친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친정 식구에게 수년 간 비밀로 하고 전국을 떠돌았다. 그렇게 서울과 경기도에서 식당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포항에서 남편의 부고가 들려왔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문만 떠돌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생각한 순남 씨는 어느 날 짐을 싸 고향인 대구로 갔다. 동생 순복 씨는 "누나가 갑자기 대구에 와 '남편과 이혼하고 집을 나왔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나를 담담히 받아들이셨다"고 한숨지었다.
대구로 온 뒤 순남 씨는 섬유공장에 취업했다. 공장이 문을 닫는 날에는 식당에서 설거지와 서빙을 하며 푼돈을 벌었다. 돈을 열심히 모아야 나중에 자신이 큰 병에 걸리면 가족들에게 큰 폐를 끼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이런 순남 씨에게도 어느 날 꿈이 생겼다. 그는 식당 사장이 되고 싶었다. 한 단체의 도움으로 창업자금 5천만원을 대출받았고 그 돈으로 북구 복현동 한 초등학교 맞은편에 분식점을 차렸다. 떡볶이와 김밥, 돈가스 등 초등학생들을 주요 고객으로 잡고 분식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적자폭이 커졌고 하루 매출이 2만원이 안 되는 날도 허다했다. "한번씩 누나 집에 가보면 소주병이 있더라고요. 반평생 혼자 살았으니 외로워서 잠 잘 때마다 한 잔씩 하는 것 같던데 그 소주병을 볼 때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기댈 언덕 없어
순남 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다. 부양 가족이 없는 데다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까지 근로 능력이 있다고 판단돼 여태 정부 지원금 한 푼 받지 못했다. 현재 그의 유일한 수입원은 분식점을 운영하며 들어둔 보험이다. 넉 달간 수술을 받고 병실에서 지내며 나온 병원비는 2천200여만원으로 간병비도 200만원 넘게 밀려 있다. 이중 보험사에서 받은 460만원으로 병원비 중간 정산을 했고 입원비 명목으로 매일 3만원씩 지원받고 있지만 이 돈으로 병원비를 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순남 씨의 남매들도 도와줄 형편이 못 된다. 3남3녀 중 첫째 오빠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둘째 오빠는 10년 전 건축 현장에서 일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크게 다쳐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인천에 사는 두 언니도 먹고 사는 것이 빠듯해 순남 씨에게 선뜻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올해 아흔을 넘긴 친정 엄마를 보살피고 있는 막내 동생인 순복 씨도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다. 순복 씨는 "주변에 수소문 해도 1천만원 넘는 현금을 선뜻 빌려줄 만한 사람이 잘 없더라. 누나를 살리기 위해 내 장기를 불법으로 팔 생각까지 했다"며 가슴을 쳤다. 이런 동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순남 씨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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