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지는 사람들/셰리 터클 지음/이은주 옮김/청림출판 펴냄
"언제부턴가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더라고요. 상대방의 표정이나 기분을 살펴야하고, 대화의 화제도 고민해야 하고…. 그러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기도 하고요."
H는 스마트폰을 연신 들여다보며 푸념했다.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트위터와 페이스북 새글 알림 소리는 연신 '띵동' 거렸다. "시간이 나면 주로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데요. 제가 원할 때만 접속을 해서 만날 수 있으니 좋고, 편해요.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없지만 트위터 팔로어들은 꽤 많은 편이에요. 어딜 가건 스마트폰으로 '나 어디 왔다'고 올리는데, 맞팔 친구들은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편이니까. 좋죠 뭐." 30대 중반을 넘긴 나이, H의 연애도 5년째 무소식이다. "에이…. 신경 쓰이고 귀찮아요. 일일이 챙겨줘야 하고, 왜 연애를 해야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식당에 들른다.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주문한 뒤 바로 꺼내는 건 '스마트 폰'이다. 상대방과 마주 앉아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카카오톡을 날리거나 트위터에 '뭐 먹으러 왔다'고 올리기도 한다. 그 사이, 대화는 일시 정지(Pause) 상태. 눈치를 보며 잠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가도 몇 분도 안돼 꺼내서는 만지작거린다. 저들은 왜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일까.
테크놀로지는 사람들 '관계'를 '연결'로 대체한다. 만나고 대화하며 감정을 나눠야하는 '관계'에 비해 '연결'은 원하는 시간에,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는데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타인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세상과 단절될 수 있다는 '공포'는 사람들을 24시간 네트워크에 묶어둔다.
'외로워지는 사람들'은 컴퓨터와 스마트 폰 등 디지털 기기로 네트워크화된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한 책이다. 나아가 새로운 친교의 대상이 된 로봇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탐구한다.
MIT 사회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30년 전부터 과학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왔다. 저자의 연구 대상은 1990년대 이후에 출생한 5세부터 20대 초반까지 어린 세대다. 이들은 사랑을 요구하는 장난감과 휴대전화와 더불어 자라는 소위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이다.
네트워크화는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인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생각은 작은 스크린에 맞도록 재구성되고 이모티콘으로 감정이 속기된다. 문자로 빠른 답변이 오가는 세상은 청소년들이 독립적 자아를 형성할 기회를 빼앗는다.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인간은 각자의 프로필로 축소된다. 온라인 삶을 위한 프로필은 과장되기 마련이고, 현실의 '나'와 가상세계의 '나'를 혼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저자가 주목한 또다른 테크놀로지는 '사교 로봇'이다. 사교 로봇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타마고치'나 노인이나 환자들을 위한 치료 로봇인 '파로' 등 디지털 생명체를 가리킨다. 사교 로봇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잘 자라지 않고, 사람이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따라 달리 반응한다. 사람들은 로봇과 교감나누기를 시도하고, 로봇이 곁에 있으면 누군가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독 속, 새로운 친교의 등장이다. 보스턴의 한 양로원에서 만난 72세 여성은 외롭고 삭막한 양로원에서 하프물범 모양의 사교 로봇, 파로의 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한다. "그래, 너도 슬프지? 사는 게 원래 힘든거란다." 파로는 고개를 돌리며 '가르릉' 소리를 낸다. 그녀는 로봇을 생명체로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로봇을 친구로 여길 경우 제일 먼저 잃게 되는 것은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능력이다. 요구 없는 로봇과의 교제에 익숙해지면 사람들과의 삶이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테크놀로지를 창조했지만 너무도 자유로워진 나머지 어디를 가든 일을 해야하는 동시에, 어디를 가나 외로운 존재가 됐다. 고립과 단절이라는 틈새를 새로운 테크놀로지로 메우려고 할수록 우리의 감성적 삶은 붕괴된다. 저자는 "더 풍요로운 인간관계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으로 테크놀로지를 운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560쪽, 2만3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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