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주당들은 술에 멋을 입힌다.
막걸리는 사발이나 놋그릇에 마셔야 제격이겠지만, 요즘 포항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릇 대신 유리잔을 찾는다. 이유를 들어보니,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의 멋을 따라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지긋한 연세의 주당에게"유리잔에 마시면 막걸리 찌꺼기가 술잔에 남아 보기 좋지 않을텐데…"라고 하자, "참, 멋없는 사람일세"라는 답이 돌아온다.
박 전 대통령이 양주를 마신 뒤 마지막에 막걸리와 사이다를 유리컵에 섞어 마셨다는 설과 일국의 대통령이 서민과 똑같이 놋그릇에 마시는 것이 모양새가 맞지 않다고해 유리컵에 마셨다는 설, 이 2가지가 막걸리를 유리컵에 담게하는 멋으로 변했다고 어르신들은 얘기한다.
막걸리 집에 가서 유리컵에 막걸리를 '쫘악' 부어 마시는 사람들이 놋그릇에 마시는 이들을 보고, "내가 니랑 똑같나"라며 유쾌한 농을 던지며 웃는다.
막걸리를 담는 그릇이 뭐 그리 중요할 지 모르겠지만은, 대통령을 추억하는 이들은 유리잔을 '대통령 잔'이라고 부르며 폼 나게 한잔 들이켠다. 이날 하루만이라도 대통령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말이다.
포항'박승혁기자ps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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