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태항산맥 비경 속으로

입력 2012-06-20 07:33:25

남북 600km 대협곡 파노라마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

"드넓은 평원 지대인 중국 하남성 지역에는'산을 보러 가면 말이 죽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평원이 하도 넓어서 태항산맥에 도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태항산맥의 산세가 워낙 험준해 타고 간 말이 금방 지쳐버려 이런 얘기가 나온 겁니다."(현지 가이드의 말)

태항산맥(太行山脈)의 별칭은 '중국의 그랜드 캐니언'(미국 애리조나 북부에 있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대한 협곡)이다. 남북 길이 약 600㎞, 동서 길이 약 250㎞에 걸쳐 펼쳐진 험준한 산맥인 것. 그래서 태항산맥은 춘추전국시대부터 근대까지 역사적으로 치열한 전투가 많이 벌어진 군사적 요충지였다. 당대의 세력가들은 이곳만 잘 지키면 중원을 장악할 수 있었다. 전한을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과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가 싸운 곳이고, 중국 팔로군과 일본군도 전투를 벌였다. 태항산맥은 중국 역사를 좌우하는 현장이었다. 그 흔적은 웅장하고 빼어난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흥을 준다. 태항산맥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인 구련산, 천계산, 왕망령, 만선산, 팔리구, 태항 대협곡을 다녀왔다.

◆구련산, 천계산, 왕망령=구련산(九蓮山)은 산세가 9개의 연꽃(蓮花)이 하늘로 피어오르는 모습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천'(天)의 테마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구련산은 태항산맥 남부에 있다. 120m 높이의 천호폭포와 999개의 돌 계단으로 이뤄진 천제, 하늘의 문이라는 뜻의 천문구 등 지명에 하늘 천(天)자가 붙은 곳이 많다. 그만큼 웅장한 경치가 산 전역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산에 사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소박하다. 한나라 때 도교와 불교가 융합돼 세워진 사찰인 서련사가 있는 서련촌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높은 천호폭포와 달리 아담하고 유려한 굴곡이 매력인 선지협폭포도 볼거리다. 구련산에 가면 천호폭포의 세찬 물줄기를 관람하면서 폭포 꼭대기 구련담에 오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반드시 탑승해보자.

구련산에서 맛본 '천'(天)의 테마는 동쪽으로 조금 가면 있는 천계산(天界山)으로 이어진다. 이름 그대로 천계(天界), 하늘 세상이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백리화랑(百里畵廊)이라 부른다. 사방 어디를 돌아봐도 광활하게 펼쳐진 협곡의 풍경이 감동을 준다.

천계산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왕망령(王莽嶺)에 오를 수 있다. 광무제(유수)가 왕망의 추격을 피해 숨었던 곳으로, 뒷날 힘을 키운 광무제는 왕망의 신나라를 멸하고 후한을 건국한다. 왕망의 회한이 서려 있는 왕망령은 최고 1,665m부터 최저 약 800m까지 높고 낮은 봉우리 50여 개로 이뤄져 있다. 왕망령은 해가 뜨기 전에 오르면 좋다. '해를 보는 전망대'라는 뜻인 관일대에서 바라보는 일출 장면이 장관이다.

◆만선산, 팔리구='천'(天)의 테마는 만선산(萬仙山)으로 이어진다. 하늘의 신선이 1만 명이나 와서 사는 산이라니 말이다. 만선산은 2005년 세계지질공원, 국가삼림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만큼 경관이 빼어났다.

그런데 만선산 아래에는 '천'(天)을 극복하려 노력했던 원주민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어 방문객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만선산으로 향하는 1,250m 길이의 암벽터널은 인근 마을인 곽량촌 주민들이 기계의 도움 없이 공구만으로 뚫은 터널이다. 수많은 곽량촌 주민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가파른 절벽을 오르내리다 떨어져 죽었다. 그래서 곽량촌 주민들은 1972년 암벽에 터널을 뚫기 시작, 5년 만에 마을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터널을 완성했다. 당시 마오쩌둥 국가 주석은 마을 주민들에게 '영웅' 칭호를 내렸다. 곽량촌에서 조금 내려오면 해, 달, 별처럼 보이는 문양이 있는 일월성석(日月星石)을 만날 수 있다. 1994년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한 이 바위는 자연석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또렷한 문양이 신기함을 자아낸다.

팔리구(八里溝)는 사방으로 8리(4㎞)에 걸친 지역이라는 뜻이다. 팔리구 지역 사방에도 아름다운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최근 팔리구에 붙은 별칭이 '북방의 워터월드'이다. 중국 남방 장강(長江) 주변의 자연 경관과 견줄 수 있다는 얘기다. 팔리구 안을 걷는 동안 도화만 폭포, 매화녹원, 청룡담, 대백옥, 일선천 등 산과 물이 어우러진 절경을 쉴 새 없이 관람할 수 있다. 팔리구의 백미는 천하폭포다. 높이가 180m로 태항산맥 최고의 폭포라 할 수 있다. 폭포 밑에는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수렴동 동굴이 있다. 동굴을 지나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폭포수 소리가 속세의 번뇌를 시원하게 씻겨주는 듯하다.

◆태항 대협곡=태항산맥 북부에 있는 태항 대협곡(이하 도화곡)은 태항산맥 여행의 백미다. 이곳은 티베트의 브라마푸트라 계곡, 충칭 지역의 장강삼협 등과 함께 중국의 10대 계곡으로 꼽힌다. 인근에 화가를 양성하는 실습학교가 있을 정도로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도화곡에는 협곡을 걸으며 자연 그대로를 눈에 담고, 체험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잘 마련돼 있다.

도화곡 트레킹 코스는 2개로 나눠진다. 첫 번째 코스는 황룡담, 함주, 이룡회주, 구련폭포 등으로 구성된 도화곡 풍경구다. 호수 위를 공중 부양하듯 걷는 묘미가 있다. 호수 위에 설치된 철제 계단을 걷고, 구름다리를 건너는 동안 협곡을 따라 흐르다 이내 폭포가 돼 떨어지는 호숫물의 시원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두 번째 코스는 목마파, 관경대, 통제, 사자동, 옥황각, 운제하복동, 왕상촌 등으로 구성된 왕상암 풍경구다. 호수를 지나니 등산 코스다. 이곳에서 태항산맥의 속살을 확인할 수 있다. 짙은 녹음이 구석구석 낀 절벽, 봉우리 등은 태고의 신비를 보는 듯 원시적이서 경이롭다. 가는 길 곳곳 돌출된 암벽에 허리를 낮게 숙여야 지나갈 수 있는 코스가 적잖다. 그만큼 굴곡의 역동성을 짐작하기 힘들어 가는 길 내내 미지를 탐험하는 듯 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스릴의 백미는 하산 코스 마지막 부분에 있는 88m 높이의 나선형 계단이다. 모두 320여 개의 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태항산맥 최고의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과감히 도전을, 조금 망설여진다면 왕상암 풍경구 입구에서 미리 도착지로 우회해 가면 되니 참고하자.

◆대구에서 태항산맥 가는 방법=여객기를 타려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대구공항에서 바로 출발 가능하다. 중국국제항공(Air China)은 대구~베이징 간 정기노선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주일에 4번, 월'목'금'일요일 오후 12시 35분에 출발, 1시간 20분이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다.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태항산맥이 있는 하남성으로 3, 4시간가량 고속철 등 열차편을 타고 가면 된다. 태항산맥 관광의 요충지인 하남성 신향시, 임주시, 안양시 등으로 가서 여행 일정을 시작하면 되는 것. 신향시는 구련산, 천계산, 왕망령, 만선산, 팔리구와 1,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임주시와 도화곡은 불과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다. 특히 신향시는 올해 말 고속철이 연결되면 북경에서 2시간 이내에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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