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상의 울타리를 벗어나 부모와 자녀가 함께 체험학습을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어디서 어떤 내용의 체험을 할지는 고민이다. 배낭을 꾸려 멀리 가자니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고, 주말을 이용해 잠시 다녀오기에 시간도 빠듯하다.
하지만 굳이 유명한 장소, 최신 시설이 완비된 곳을 찾아다니려 애쓸 필요는 없다. 주말 짬을 낸다면 자연을 벗삼을 수 있는 곳이면 족하다. 대구 근교에서 폐교를 활용, 시원한 공기와 함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꾸민 체험 장소를 찾아봤다.
◆청도의 '서른살 감나무'
"미리 설명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예쁜 무늬가 나올 줄 몰랐어요. 엄마께 보여 드리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12일 같은 반 친구들과 교육농장 '서른살 감나무'를 찾은 최영진(청도 금천중 1학년) 양은 쪽염색 체험을 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무늬를 만들기 위해 흰 티셔츠를 뭉치고 고무줄로 감아 고정하는 것이 첫 순서. 이를 염색물에 담갔다 운동장 한쪽에 만들어진 개울에서 헹궈낸 뒤 펼치자 기하학적 무늬가 가득했다. 빨랫줄에 널린 아이들의 티셔츠 무늬는 하나도 같은 게 없었다.
옛 각북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한 비슬도예원에는 농촌진흥청 지정 교육농장인 '서른살 감나무'(청도군 각북면 헐티로 787번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몽숙 씨가 도예가인 남편 김병열 씨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운동장에는 파란 잔디가 자라고 옛 교사 귀퉁이 '새싹 마을'이라 이름붙인 밭에는 곰취, 당귀, 상추, 쑥갓, 청경채 등이 한창 싹을 틔우고 있다.
청도의 특산품은 감. 이곳에도 감나무는 여러 그루인데 감나무마다 '감은 얼마 만에 열릴까요', '청도 반시는 몇 개의 씨가 있을까요' 등 질문을 적은 판자를 걸어둔 게 눈에 띈다. 교실로 들어가면 질문에 대한 답과 부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곳은 쪽염색 체험 외에 도자기 만들기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백자토로 만든 도자기를 이곳에 맡겨두면 그늘에서 말리고 유약을 발라 구워 한 달여 뒤 택배로 보내준다.
이곳 프로그램은 일단 단체 이용객 위주. 도자기 만들기와 쪽염색 체험 등 2시간짜리 프로그램 이용료는 1인당 1만4천원. 여기에 청도 반시 신문 만들기와 반시 포장 상자 만들기 등이 더해진 4시간 프로그램은 1만9천원이다. 하지만 미리 연락하면 토요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진행하는 도자기 만들기, 쪽염색 체험에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도 있다. 옛 교사 2층에 숙박 가능한 방이 2개 있다.
대구에서 이곳을 방문하려면 가창댐을 지나 헐티재를 넘으면 된다. 다만 대중교통 편으로 이곳을 찾기는 쉽잖다. 이몽숙 대표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편히 놀다 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든 공간"이라며 "계절별로 프로그램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미리 연락을 주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010-4929-6344.
◆영천 금대생태학교
1995년부터 생태 교육을 해온 영남자연생태보존회에서 4년째 운영 중인 금대생태학교(영천시 임고면 금대리 446-1번지). 임고초등학교 금대분교장이 있던 곳이다. 얼핏 보면 허름해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낡은 교사가 그대로 있을 뿐 아니라 운동장은 가운데까지 나무 외에 온갖 잡초가 수북이 자라고 있기 때문.
하지만 보존회 측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최대한 자연 생태를 그대로 느끼고 관찰할 수 있도록 일부러 잡초가 크도록 했다고 한다. 건물 자체도 가급적 옛 모습을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복도 천장만 손을 봤을 뿐 대부분 분교 시절 모습 그대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거기에 익숙해지는 과정 역시 교육의 하나라는 것이 보존회의 생각이다.
보존회 정제영 총무이사는 이곳이 자연을 대상으로 감수성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 "주변이 운주산으로 둘러싸인 데다 민가가 드물어 밤이 어둡고 조용해요. 덕분에 별 보기에는 그만이죠. 운동장에 유도등을 켜면 장수풍뎅이 등 불빛을 보고 몰려든 각종 곤충들도 관찰할 수 있어요."
겉모습과 달리 속은 제법 알차다. 보존회가 모은 각종 표본을 전시한 곤충관, 물고기관, 식물관과 화석·암석관을 갖췄다. 표본 하나하나마다 학명과 서식지 등 설명이 꼼꼼히 붙어 있다. 인근에 임고천이 있어 수중 생태를 관찰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
이곳은 생태 교육 강좌도 다양하다. '곤충들의 세계' '하천의 이해' '숲과 사람' '밤하늘의 별' '나도 농부' 등 12개 강좌가 운영된다. 이들 강좌는 어류학, 곤충학, 생태학, 식물학, 지질학 등 분야별 박사 학위 소지자 8명이 이끌어 깊이를 더한다. 1강좌당 참가비용은 1인 기준 1만원. 미리 예약하면 원하는 강좌를 들을 수 있다. 교사 2층 한쪽에는 50여 명이 잘 수 있는 방 2개가 마련돼 있다. 하룻밤 숙박료는 1인당 5천원. 텐트를 가져오면 야영도 가능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영천버스터미널에서 수성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보존회 이진국 이사는 "가족 단위로 와서 편하게 쉬다 가도 되지만 생태 교육 강좌를 듣고 싶다면 20여 명 이상이 함께 찾을 것을 권한다"고 했다. 053)767-2030.
◆팔공산 '전통놀이터 마당'
대구공항에서 평광동으로 가는 팔공1번 버스를 타고 20여 분쯤 갔을까. 조용한 농촌 풍경이 펼쳐지면서 내릴 지점인 평광교가 나왔다. 몇 발짝 떼니 옛 평광초등학교 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는 전통놀이 체험장인 '전통놀이터 마당'(대구 동구 평광동 1096번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 실내에선 특수학교인 대구성보학교 학생 20여 명이 나무토막으로 벌, 풍뎅이 등 곤충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학생들이 미리 잘라둔 나무토막을 서로 끼우거나 실리콘 접착제로 붙이다 보니 어느새 제법 근사한 곤충 모양이 갖춰졌다. 잠시 후 운동장으로 나선 아이들은 투호, 대나무고리 던지기 놀이에 열중했다. 휠체어나 인솔 교사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다들 환했다.
성보학교 홍희정 교사의 기분도 마찬가지.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기 쉽지 않지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심에서만 생활하다 맑은 공기도 마시고 전통놀이도 해보니 아이들도, 저도 모두 즐거워요."
이곳에선 다양한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제기차기, 윷놀이, 팽이치기, 썰매 타기, 비석치기, 강강술래, 땅 따먹기, 두꺼비집 만들기, 굴렁쇠 굴리기 등 즐길 수 있는 놀이도 다양하다.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별도의 설명 없이도 체험이 가능하다. 그래도 해보기 어렵다면 안내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1인당 입장료는 5천원, 곤충 만들기 등 실내 수업료는 3천~5천원. 야외에서 펼쳐지는 놀이 체험 비용은 입장료에 포함돼 있다. 옛 교사 2층에 마련된 방이 2개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각 33㎡ 정도 크기다. 부엌과 조리도구, 냉장고 등이 구비돼 있어 음식 재료만 챙기면 숙박 준비는 끝. 1인당 5천원이면 하루 묵어갈 수 있다. 인근에 자리한 천연기념물 1호 측백나무숲, 국내 최고령 홍옥사과나무를 볼 수 있는 대구올레길 팔공산 제4코스 '평광동네길'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
이곳을 운영하는 한국여가연구소 윤재섭 소장은 "놀이 서비스를 받는다고 생각지 말고 놀이를 하러 온다는 기분으로 찾아주면 좋겠다"며 "가족 단위로 온다면 부모가 자녀에게 직접 전통놀이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정을 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053)983-6519.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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