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의 열정, 세상으로 선물…지역의 이색 박물관 3곳

입력 2012-06-16 07:27:08

총 든 저 로봇 깊은 밤 되면 살아 설칠라

12일 경북 경산에 있는 국내 최대 영화 피겨 박물관인 CW를 찾은 관람객들이 각종 피겨 전시물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12일 경북 경산에 있는 국내 최대 영화 피겨 박물관인 CW를 찾은 관람객들이 각종 피겨 전시물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대구 수성구에 있는 수 박물관은 자수와 민화를 통해 전통문화는 물론 여백의 미도 배우려는 아이들이 많이 찾는다.
대구 수성구에 있는 수 박물관은 자수와 민화를 통해 전통문화는 물론 여백의 미도 배우려는 아이들이 많이 찾는다.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지역 이색 박물관 3곳을 찾았다. 그런데 이색적인 전시물은 물론 박물관에 깃든 참신한 생각도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물 수집 방법, 박물관 활용, 수집품 기증 등에 대한 참신한 생각들이 전시물이 주는 감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스타워즈'가 꿈꾸게 해 준 '시네마 천국'

시네마 천국이 우리 지역에 있다. 경북 경산에 있는 국내 최대 '영화 피겨' 박물관인 'CW'다. '스타워즈' '터미네이터' '반지의 제왕' 등 유명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소품 등 3천여 점의 피겨가 전시돼 있다. 국내 최대인 것은 물론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박물관의 주인은 조웅(35) 씨다. 박물관 이름 CW는 바로 조 씨의 영문 이름 이니셜이다.

조 씨는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한 영화 스타워즈 관련 콘텐츠 수집가다. 물론 스타워즈 이외에도 각종 영화 관련 콘텐츠를 수집하고 있다. 그런데 DVD와 영화 포스터도 수집하지만 피겨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피겨는 영화의 특징을 압축해 입체적으로 표현합니다. 그 매력은 다른 영화 관련 콘텐츠와 비교할 수 없죠."

영화 스타워즈는 조 씨 인생의 방향을 결정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에 이끌려 처음 찾은 극장에서 스타워즈를 접했다. 그때 조 씨는 두 가지 꿈을 품었다. 하나는 영화 속 세상처럼 멋진 디자인을 구현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 조 씨는 정말로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우주 전함처럼 멋진 자동차를 그리는 광고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또 하나의 꿈은 영화 피겨 박물관을 짓는 것이었다. 꿈은 올해 3월 박물관 문을 열면서 실현됐다. 서울이 고향인 조 씨는 처가가 있는 경북 경산을 자주 방문하며 눈여겨 둔 남천둔치 인근에 박물관을 지었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수백 명의 피겨 마니아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수집은 인류의 오래된 취미입니다. 원시인들은 먹고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되자 돌멩이에 그림을 그려 수집했다고 해요. 인류는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수집'이라는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영화 피겨가 애정의 대상입니다."

조 씨가 본격적으로 피겨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2년 전 해외여행 중 우연히 피겨 숍에 들른 뒤부터다. "미국, 일본 등에서 피겨 수집은 이미 대중화된 취미입니다. 피겨를 절대 장난감으로 보지 않아요. 제작에 몇 달이 걸리는 제품도 있는 등 피겨는 하나의 예술작품입니다."

그렇게 피겨를 모은 것이 현재 5천여 점이나 된다. 박물관에 전시하고 남은 피겨 2천여 점은 박물관 창고에 보관돼 있고, 곧 전시할 예정이다.

조 씨가 수집한 피겨의 가격대는 1만원대부터 수천만원대까지 다양하다. 가장 비싼 피겨는 현재 박물관 입구에 전시돼 있는 스타워즈 캐릭터인 C3PO와 R2D2 로봇의 실제 크기 피겨다. 시가 3천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피겨 수집에는 비용보다 시간이 더 들기도 한다. 조 씨는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등장인물인 토토와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우정을 상징하는 소품인 영사기를 구하는 데 2년의 시간을 들였다. 그는 끈질긴 정보 수집 끝에 영사기가 1950년대에 생산된 독일 제품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독일의 한 소장가로부터 경매로 구입했다.

이렇듯 얼핏 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철저한 고증이 조 씨의 수집 철학이다. 영화 'ET'에서 등장인물인 엘리엇과 ET가 함께 타고 하늘을 나는 빨간색 자전거는 1980년대 초반 미국에서 청소년들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일본 브랜드 제품이다. 역시 수소문 끝에 손에 넣었다.

피겨는 조 씨에게 인생 최고의 로맨스도 선사해줬다. 조 씨가 부인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 선물한 것이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소품이다.

그는 아직 목이 마르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등장인물들이 시간 여행을 할 때 탔던 드로이안 자동차를 꼭 구하고 말겠단다.

조 씨는 "피겨 문화가 점차 대중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겨 수집이 현재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5~10년 뒤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피겨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며 "덩달아 캐릭터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릭터 콘텐츠는 미래 고부가가치산업의 핵심 요소다. 실제로 피겨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각종 광고에 연예인보다 영화나 만화 캐릭터가 더 많이 출연할 정도다.

조 씨는 "(박물관을) 영화를 매개로 세대가 서로 공감하는 장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영화 제작자 월트 디즈니는 '영화란 아이들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동심을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력과 즐거움을 얻고, 어른들은 가슴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영화 피겨 박물관으로 가꿔나가겠다"고 말했다.

박물관 건물에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역시 영화가 콘셉트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등장인물인 막시무스의 실제 크기 흉상이 있는데 디자인을 전공한 조 씨가 솜씨를 발휘해 직접 만든 것이다. 화장실에 가면 있는 힘껏 고뇌하는 스톰트루퍼(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악역 캐릭터)들도 만날 수 있다.

※피겨(figure)란?

영화'만화'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축소해 정교하게 재현한 인형. 원래의 캐릭터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수십 군데에 관절이 설계돼 있어 사람의 동작을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피겨도 있다. 이렇게 정교하다 보니 대량으로 만들기 어려워 소량 한정판이 많고, 인기 피겨의 경우 출시되자마자 품절되기도 한다.

▷CW. 경북 경산시 대평동 437-1. 053)812-6543.

◆아이들이 민화와 자수로 여유를 배우는 곳

2010년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문을 연 '수 박물관'은 '민화'와 '자수'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애호가들 사이에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콘셉트를 더 갖고 있다. 바로 아이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민화를 그리고, 바느질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물론 아이들에게 민화와 자수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이경숙 관장은 "아이들이 박물관에 와서 상처를 치유하고, 여유를 배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행복지수는 최하위, 자살률은 1위인 현실을 언급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경쟁 구도에서 나온 사회적 긴장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돼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 그래서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이 받는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박물관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법은 바로 '여백의 교육'이다. 이 관장은 "아이들은 지금껏 채우고 쌓는 교육만 받아왔다. 남들보다 덜 채우고, 덜 쌓으면 혼날까 봐 불안해한다. 아이들이 박물관에 와서 여백을 느끼고 사유하면 좋겠다. 창의와 인성도 사실은 여백의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화와 자수 작품의 특징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민화와 자수 작품에 담긴 스토리텔링에 빠져든다는 것. 학교 수업처럼 작품을 누가 언제 만들었고, 문양과 무늬의 명칭이 무엇인지 달달 외우며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민화와 자수를 가르치는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세대 간 공감의 장으로 삼으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세대공감! 할머니와 함께하는 민화, 자수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곧 운영할 예정이다.

수 박물관의 또 다른 특징은 동네 주택가에 있는 소규모 박물관이라는 점이다. 주민 누구든지 동네 쉼터를 찾듯이 편안하게 와서 쉽게 전시물을 관람하고 또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수 박물관. 대구 수성구 범어2동 136-8번지. 053)744-5500.

◆열린 기증의 철학이 만든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지노리, 스포드, 세브르, 헤런드, 웨지우드, 헤런드, 마이센, 로얄코펜하겐…. 다소 낯선 이 단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유럽 유명 자기 브랜드들이다. 경북 김천에 있는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에 가면 다양한 유럽 자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무려 1천여 점이나 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 작품을 모두 1명의 기증자가 내놓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현재 경기 부천시 유럽자기박물관의 관장으로 있는 복전영자(66'여) 씨. 그는 2005년 3월 경북 김천시에 유럽 자기와 크리스털 1천여 점을 기증했다. 당시 전국 10여 개 지방자치단체가 기증을 받으려 신청했지만 유럽 자기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준 김천시가 복전영자 씨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2006년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후 인근에 있는 직지사, 직자문화공원과 함께 김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복전영자 씨는 앞서 2002년 4월 경기 부천시에 유럽 자기 800여 점을 기증했다. 또 2004년 6월에는 상명대 박물관에 유럽 자기 500여 점을 기증했다.

오랜 시간 거액을 들여 힘들게 수집한 대량의 작품들을 선뜻 3곳 박물관에 기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복전영자 씨는 젊은 시절부터 남편과 함께 뉴욕 크리스티와 런던 소더비 경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유럽 자기 수집에 심취했다. 그의 어머니도 세계 각국을 돌며 도자기를 수집했다. 어깨너머로 안목을 키운 그는 1967년부터 유럽 자기와 일본 도자기 등을 수집했다. 그렇게 방대한 양의 작품을 수집하면서 점차 수집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단다. 작품을 혼자서만 감상하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감상할 수 있도록 기증을 결심한 것.

복전영자 씨는 "수십 년간 세계 곳곳을 다니며 수집한 작품들을 박물관을 찾는 시민과 문화예술 애호가들을 위해 기증했다. 그만큼 유럽 자기의 예술성과 장인정신을 널리 공유할 수 있어 보람되고 기쁘다"고 말했다.

▷김천세계도자기박물관.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91-1. 054)420-6726.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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