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담 너머 연둣빛 감꽃을 드리운 시골마을을 지나 산곡의 작은 연못에 이르렀습니다. 맑은 물속으로 청빛 하늘이 내려앉습니다. 싱그러운 풀 비린내가 출렁거립니다. 순간 동심에 겨워 돌 하나를 집어들고 물수제비를 뜹니다. 내 손을 벗어난 돌은 두어 번 튀기다 맙니다. 하나 더 집어 던져보지만 돌은 내 바람과 달리 그냥 물속으로 쏙 주저앉고 맙니다. 연못가의 부평초 같은 마름을 피해 던지려 하던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팔매질이 됩니다.
동행한 한 후배가 멋지게 시범을 보입니다.
"이렇게 자세는 낮추고 던질 곳을 본 다음 힘을 빼야죠" 하면서.
나는 청년기를 거치면서 탁구며 테니스에 푹 빠진 적이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는 골프를 시작했어요. 모두 도구를 사용하는 공놀이입니다. 축구나 농구처럼 내 몸을 공에 직접 부딪치면서 다루는 게 아니라 손에 든 하나의 도구로 공을 정확하게 맞히는 운동인 것입니다.
공을 자유롭게 다루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흔히들 운동은 폼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요. 정과 동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이루어내는 정형의 미(美)이니까요. 기계체조는 말할 것도 없고 구기 운동도 예외가 아닐 겁니다. 폼이 좋아야 결과도 좋다는 것을요. 많은 사람들이 그 유연한 선형 만들기에 좌절하고, 도전하기를 반복합니다.
골프 운동은 더욱 그러하다지만 나는 그리 얽매이지 않습니다. 다만 가격하여야 할 공에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애쓸 뿐입니다. 스윙 자세가 유연하지 못해 조금 민망스럽긴 해도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갑니다.
지난 초겨울, 지인이 사는 산촌마을에 들렀습니다. 깊은 산 속, 일조량조차 짧은 그 마을은 마치 문명을 등지고 사는 듯 장작불로 온돌을 데웁니다. 희수를 바라보는 지인은 장작을 쪼개어 매끈한 꽃담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도끼날을 내리칠 때마다 제법 굵직한 통나무가 연한 소리를 내면서 반쪽으로 반듯하게 쪼개집니다. 그분의 도끼질은 전혀 힘이 들어 보이질 않습니다. 겨울 한철 도끼질에 몰두하노라면 복잡한 세상사도 잊어버린다고 하며 그분은 장작 패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바라보던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도끼 자루를 건네 받아들었습니다. 도끼 머리는 꽤 묵직합니다. 내친김에 마른 참나무 한 토막을 올려놓고 도끼날을 내리쳤습니다. 생각과 달리 날이 바로 맞지를 않았습니다. 지인은 쪼갤 부위를 정확하게 보고 도끼날을 그 무게의 힘으로 내려놓아야 자기 의지대로 쪼개진다고 조언합니다. 마음은 도끼날을 본다지만 도끼를 내려놓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떼고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보는 지점과 날이 박히는 곳이 일치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았습니다. 번번이 빗나가고 맙니다.
도끼질뿐 아닙니다. 사격할 때나 활을 쏠 때도 표적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가르칩니다. 비록 시위를 떠난 화살일지라도 그 화살이 목표에 명중되는 순간까지 시선은 목표물에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이 모두는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통로입니다. 그중에서도 보는 것이 가장 먼저이지요. 실로 본다는 것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와 눈을 맞추면서 하루하루 자라듯이 인간의 모든 행위는 보는 것에서 출발하는 듯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디를,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것은 곧 삶의 향방을 결정하기도 하지요. 무엇을 딱 맞추려 할 때, 무엇을 알아내려 할 때 심지어 누군가의 사랑을 얻으려 할 때도 먼저 바라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마음이 머물지 않고 보는 것은 보되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정성껏 기울여 그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보는 것, 세밀하게 보는 것 그리고 끝까지 보는 것에서 자신의 의지가 관철된다고 믿습니다. 그 쉬운 팔매질도, 마른 나무토막 위를 그냥 내리치면 되는가 싶던 도끼질에도 대상을 끝까지 보아야 한다는 쉽고도 어려운 원리가 숨어 있음을 내가 직접 부딪쳐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김정식/담나누미 스토리텔링연구원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