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빈여우(如賓如友)

입력 2012-06-07 07:52:45

최근 우리나라 여성의 70% 이상이 지금의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여성의 71.8%가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 여성이 남편을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져 노부부 간의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는데 동의했다는 지적은 노후의 부부 삶에 대한 우려를 더해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친밀해질수록, 의견 차이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에 대한 비유는 이러한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온기를 느끼기 위해 함께 모이지만, 가시가 상대를 찌르기 때문에 서로 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추우면 다시 모였다가 가시가 상대를 찌르게 되면 떨어지는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모이고 떨어지기를 반복한 뒤 마침내 그들은 서로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고슴도치와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편안함과 따뜻함을 얻기 위해 무리를 지으려는 강한 욕구가 있다. 가족은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환경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도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에서 더 많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중요하지 않고 사소한 것들이 커다란 문제를 야기 시키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혼하는 부부들에게서는 사소한 집안일에 상대를 비난하고, 경멸과 자기방어 그리고 말을 하지 않고 담을 쌓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갈등은 그 자체만으로는 부부관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부부가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하는 것이다. 때때로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나 정신적 고통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이런 감정들은 계속 누적되어 나중에는 폭발하게 된다. 또한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아주 오랫동안 억누르게 되면, 결국에는 그 사람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아무런 감정도 갖지 않게 된다. 이런 상황은 활력이 없거나 혹은 황폐화된 부부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부부가 갈등을 회피와 과잉반응과 같은 두 가지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면 관계는 더 악화된다. 어떤 부부는 갈등이 생겼을 때, 한 편이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심지어 구타를 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어떤 상대방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며, 논쟁을 거부하는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자동차가 도로에서 갑자기 멈춰 섰을 때, 우리는 차를 그대로 두고 떠났다가 며칠 후 다시 돌아와서 시동을 걸어 보지는 않을 것이다. 견인을 하든가, 고치든가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부부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도 기대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도 부부가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부부관계는 더 심각해 질 수 있고 가정의 축까지 흔들리게 된다.

결혼 갈등의 장애물을 디딤돌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원하는지 속내 이야기를 드러내고 또한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 때 부부는 서로가 연결되고 친밀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감하고 좀 더 깊숙한 문제들을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상대로부터 수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안전하며, 나를 받아 주는 사람, 의지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마음의 친구를 찾으려는 욕구는 보편적이다. 빨간불이 켜진 부부를 그대로 방치하면 머나먼 관계로 남남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를 때에도 바른길로 이끌되 억지로 끌지 않으면 화합되고, 북돋워 주되 억지로 밀지 않으면 편안하고, 열어주되 통달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란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을 새기며 무례하지 않고 영원한 우정을 지닌 여빈여우(如賓如友)의 부부관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행복과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김정옥/대구가톨릭대학교 생활복지주거학과 교수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