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국무령 이상룡 등 독립운동가 산실…99칸 중 50칸만 남아
안동시 법흥동과 정상동 일대에 500년을 세거해 온 고성 이씨. 임청각과 귀래정으로 더 유명한 이 집안의 본관은 경상남도 고성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李原'1368∼1429)의 셋째 아들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자리를 잡고 입향조가 됐다.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이 임청각의 주인이다. 임청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임청각으로 대표되는 안동의 고성 이씨는 안동 남인 세력의 구심점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명문으로 한국독립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성 이씨의 후손인 원이 아버지 이응태와 그의 부인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랑이 담긴 '귀래정'은 현대인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 이상룡의 생가 '임청각'
안동시내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면으로 가다 보면 법흥교(법흥동) 건너기 전 철길에 가린 큰 고가가 눈에 들어온다.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로 잘 알려진 보물 제182호 임청각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별당형 정자건축으로, 1515년(중종 10년) 고성 이씨 입향조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이 신라 거찰인 법흥사 자리에 99칸 규모의 임청각을 지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지나면서 99칸 중 10칸이 소실됐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안동지역의 정기를 끊으려고 놓은 철도로 인해 행랑채, 정문, 누대 등 36칸이 철거돼 현재는 50칸 정도만 남아 있다.
이 집은 정침과 군자정, 사당, 연못 등의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좌측에 정침이 있으며 우측에는 군자정이 있다. 군자정 바로 옆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으며, 연못 옆 언덕 위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침인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해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건물과 각 동에 5개의 마당이 배치돼 정면에서 보면 '용'(用) 자를 눕힌 형상이다. 특히 사랑채의 경우 천지의 기운이 모인다는 '설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최성달 안동시역사기록관은 "풍수지리상 임청각은 누에의 머리 형상을 하고 있는 '잠두혈'로, 누에가 명주를 뽑듯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는 속설이 있다. 특히 명혈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 사랑채인데, 이곳에서는 3명의 정승이 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집에서는 숱한 고관대작은 물론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해 9명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됐을 정도로 인재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석주 선생은 구한말 애국 계몽운동의 대표적 인물이다.
석주 선생의 증손자인 이항증(72) 씨는 "석주 어르신은 일제강점기가 되자 집안에 있던 노비문서를 모두 불살라 버리고 그동안 거느리던 종들도 모두 해방시켰다.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앞장섰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으며 여러 분파로 갈린 독립운동계열 통합에 헌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청각은 독립운동가의 집안이라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일제는 고성 이씨의 맥을 끊으려고 임청각 앞뜰에 철길을 놓기도 했다. 지도를 놓고 유심히 살펴보면 안동지역을 지나는 중앙선은 유난히 구불구불한데, 바로 임청각 앞으로 길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철길을 만들면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이런 아픈 역사를 지닌 임청각이 기획재정부가 중앙선 경북 구간 복선전철화 사업을 2009년도 하반기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새로운 계기를 맞게 됐다. 일제의 만행으로 오랜 세월 동안 풍수의 맥이 끊어졌던 안동 임청각을 비롯한 탑골 일대가 복선전철화사업으로 완전히 복원될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오는 2018년이면 철길이 이전되고, 임청각 설계도가 고문서에 남아 있어 헐렸던 50칸을 복원할 수 있게 됐다.
임청각 인근에는 국보 16호로 지정된 법흥사지 칠층전탑이 있어 답사객의 발길을 붙든다. 또 인근 안동댐에는 새 명물 월영교가 있어 임청각에서 고택체험 후 이른 아침이면 물에 비치는 월영교의 환상적인 반영을 감상할 수 있다.
◆원이 엄마의 남편 이응태의 고성 이씨 정자 '귀래정'
안동시내 쪽에서 낙동강변을 바라보면, 물 건너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 보인다. 정상동이다. 이곳에 자리한 고성 이씨 종가는 시멘트를 이용해 한옥 모양으로 새로 지은 집이다.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고성 이씨 가문의 오래된 정자 옆에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새 집이 한 채 있는데 누가 보아도 정자가 중심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귀래정은 고성 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증의 둘째 아들인 낙포 이굉(1440~1516)이 지은 정자다. 이굉은 25세에 진사, 40세에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 상주목사, 개성유수 등을 지내다 1513년(중종 8년) 낙향해 이곳에 정자를 짓고 말년을 보냈다.
귀래정의 공간배치는 아주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안동의 성진골이 남쪽의 귀래정을 향해 凹모양을 이루고 있고 귀래정은 성진골이 있는 북쪽을 향해 凸모양을 이루고 있어 귀래정의 형상은 남근을 세우고 있는 모습으로 그 구조가 독특하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된 귀래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 배면 4칸의 'T'자형 팔작지붕으로 전면 4칸에는 대청을 두고 배면은 온돌방을 꾸몄다. 규모가 작고 꾸밈새가 검소하나 전면에 큰 누마루를 두어 별당으로서의 여유와 운치가 있다.
귀래정 앞에는 이굉의 신도비가 하나 더 있다. 동쪽에는 수령 300년 된 은행나무가 귀래정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다.
종손 이인형 씨는 "안동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귀래정은 물길이 부딪치며 휘돌아 나가는 암벽 위에 서 있었고. 이 아래 물이 아주 깊었다"며 "댐이 만들어지면서 물길이 바뀌어 지금은 강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됐다"고 했다.
귀래정 종가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1998년 4월 정상동 택지개발사업 때문이다. 이때 종가와 관련된 묘소를 한꺼번에 이장하면서 미라와 애절한 사랑이 담긴 원이 엄마의 편지가 발굴된 것. 무덤의 주인 이응태(1555~1586)는 귀래정 이굉의 고손자이며 원이 엄마의 남편이다.
안동대학교 박물관장으로 묘지 발굴을 주도했던 임세권 교수는 "신장은 180㎝ 정도로 시신은 많이 부패해 있었으나 얼굴 모습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돼 있었다. 턱에는 짧은 수염이 나 있었고 매우 준수해 보였다"며 발견 당시 모습을 회상했다.
이응태의 무덤에서는 그의 부인 원이 엄마가 죽은 그에게 보내는 한글 편지와 그녀가 손수 삼줄기와 머리카락을 섞어 만든 신발, 그의 형 이몽태가 죽은 그에게 주는 시, 그의 아버지 이요신에게 보냈던 그의 편지 묶음 등과 여러 옷가지와 물품이 나왔다.
이 가운데 원이 엄마 편지는 영국에 본부를 둔 세계적인 고고학저널 앤티쿼티(ANTIQUITY) 2009년 3월호 표지에 실리면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됐다. 최근 귀래정은 고택음악회의 단골 장소로 이들 부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음악과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420년의 사랑…부부 성지로 최고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원이엄마 편지글 가운데)
귀래정에서 100m 떨어진 대구지방검찰청 안동지청 앞 '원이 엄마 동상'에 적혀 있는 편지글이다. 이 편지에는 원이 엄마와 남편 이응태의 사랑과 이별, 영원한 약속 등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안동시는 이들 부부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귀래정과 원이 엄마 동상 주변에 능소화를 심었다. 능소화 꽃길은 원이 엄마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한여름날 그 크고 붉은 능소화 꽃을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달려와 주세요'라는 대목을 인용했다. 이 작품에서 원이 엄마는 능소화를 심은 뒤 죽은 남편의 뒤를 따른다.
귀래정 주변에 핀 능소화는 420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와 부인의 사랑을 부활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연인이나 부부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명소다. 안동대박물관을 찾아 이응태의 부인이 머리카락으로 짠 사랑의 미투리(짚신)와 편지를 직접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안동대학교 임세권 박물관장은 "원이 엄마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고고학 저널인 '엔티쿼티'지의 표지 논문으로 실려나가면서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며 "원이 엄마 편지와 미투리는 우리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자랑거리다"고 말했다.
안동'권오석기자 stone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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