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 모르게 외롭고/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도종환의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중에서)
길 위에 길이 풍경으로 걸려 있다. 걸개처럼 걸린 길 위의 길 풍경이 쓸쓸했다. 불현듯 길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걸어가는 길을 잃어버린 적이 많았다. 풍경으로 걸린 길을 잃어버리고 길을 걷다 보니 풍경으로 걸린 길들이 저만치에서 멀어진다. 그럴 때마다 난 쓸쓸하고 적막했다.
언어는 수없이 나를 배신하고 등을 돌렸다. 걷는 길은 언어가 없었다. 행위만 존재했다. 언어가 없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무의미했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파도도 치지 않았고, 꽃도 피지 않았고, 잎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걸어야 하는 것이 한없이 쓸쓸했다. 언어가 없으니 남은 풍경도 없었다.
언어는 전지전능하다. 이렇게 표현하고 나니 조금은 불편하다. 언어로 이루어진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여전히 허공을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는 이미 언어의 본질에서 벗어나 존재한다. 불신의 시대 속에 그래도 변하지 않고 거기에 남아 풍경을 만들 언어가 필요하다. 책쓰기는 언어로 이루어진 풍경을 기록하는 길이다.
길이 길 위에 풍경으로 걸려 있다. 길 위에 서면 나도 풍경이 된다. 내가 풍경으로 자리 잡은 풍경은 지나치게 쓸쓸하다. '풍경' 하면 바람소리가 나듯이 내가 만드는 풍경에도 바람소리가 가득하다. 풍경은 시각적이기도 하고 청각적이기도 하다. 눈으로 만나는 풍경보다 귀로 듣는 풍경이 더욱 온전히 저장된다. 그게 언어의 힘이다. 말이 풍경을 만든다. 말이 만든 풍경 위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햇살이 내려앉은 풍경 위에 내가 겹친다. 나도 풍경이 된다. 풍경을 구경하면서도 풍경이 되는 나.
늘 풍경 속에 완전히 흡입되지 못해 난 언제나 쓸쓸했다. 풍경 아래의 길들이 다시 나를 흔든다. 빨리, 그리고 높이 걸어가야지. 너 모르지? 그게 진짜 삶이야. 그 말도 맞는 것 같다고 인정하려는 내 안의 움직임이 다시 쓸쓸했다. 하지만 풍경 아래의 길을 사랑하면 결국은 풍경을 잃는다. 책쓰기는 내 안의 욕망으로 인해 잃어버린 풍경을 찾아가는 길이다.
길 위의 길이 풍경으로 걸려 있다. 모든 사물은 시간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러면 지금 나의 시간과 의미는? 내 마음의 지도가 쉽사리 완성되지 않는다. 푸른 색깔이었는데 순간적으로 고동색으로 변한다. 바다였다가 산이 되기도 한다. 도시였다가 시골이 되기도 한다. 그대였다가 내가 되기도 한다. 길의 풍경이었다가 길 위의 풍경이 되기도 한다. 사물이 시간을 만나면 풍경이 된다. 풍경이 되지 못한 사물이 저만치에서 숨을 내쉰다. 풍경이 되지 못한 사물이 쓸쓸했다. 사물은 결국 내 마음의 지도를 모두 채우지 못했다.
지도는 곳곳에 생채기이다. 끊어진 길들이 지도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다. 내가 걸으면 길이 될 터이지만 끊어진 길을 걷기가 쉽지는 않다. 새로운 길과 끊어진 길은 의미가 다르다. 끊어진 길은 단절이자 절망이다. 책쓰기는 그 단절과 절망을 넘어 길을 만든다.
길 위의 길이 풍경으로 걸려 있다. 길의 끝은 어디일까? 끝이 존재하기는 할까? 끝은 역설적인 의미를 지닌다. 끝은 절망이기도 하지만 희망이기도 하다. 끝이 시작이라는 의미 때문이 아니다. 끝이 없다면 오히려 절망적이지 않은가? 끝이 있기에 내 삶은 그만큼 절박하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존재는 언제나 끝을 꿈꾼다. 끝이 없는, 그래서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길은 오히려 쓸쓸하다. 내가 걷는 모든 발걸음을 길 위의 길이 만드는 풍경으로 채우고 싶다. 결국 나에겐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길 걸음이 책쓰기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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