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자녀와 세계 여행' 옥봉수·박임순씨 부부

입력 2012-06-05 07:53:21

넓은 세상 나가보니 아이들이 보이더라

옥봉수, 박임순 씨 부부는 세 자녀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가족 간 이해가 더 깊어졌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성격과 기질을 정확히 파악한 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옥봉수, 박임순 씨 부부는 세 자녀와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가족 간 이해가 더 깊어졌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성격과 기질을 정확히 파악한 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볼리비아 소금사막에서 옥봉수, 박임순 씨 부부와 세 자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옥봉수, 박임순 씨 제공
볼리비아 소금사막에서 옥봉수, 박임순 씨 부부와 세 자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옥봉수, 박임순 씨 제공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입버릇처럼 한국 교육을 칭찬한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학생, 학부모들은 좀처럼 행복감을 맛보지 못한다. 입시 위주의 무한 경쟁 분위기 아래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 순례길에 오른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사교육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휘청거리고 있다.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한 발 비켜나 용기 있는 도전을 택한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내던지고 자녀들과 함께 세계여행에 도전한 쉰 살 동갑내기 부부 옥봉수, 박임순 씨가 그들. 아이들의 성적표에 연연하지 않고 그들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진 옥 씨 부부를 1일 기독교 대안학교인 꿈꾸는학교에서 만났다.

◆세계로 발걸음을 떼다

"깨어진 가정을 회복하고 싶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거든요."

545일간 세 자녀와 함께 33개국을 도는 세계여행.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1986년 부산 사상중에서 체육, 윤리교사로 교사 생활을 시작한 옥봉수, 박임순 씨 부부는 22년간 몸담았던 교단을 떠났다. 고1이던 큰딸과 중3, 중1이던 두 아들은 학교를 자퇴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하지만 부부에겐 돌파구가 필요했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자'는 생각에 학원 대신 산과 들로 데리고 다녔지만 중학교 진학 후 첫 시험에서 딸이 350명 중 215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오자 박 씨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충격이 컸어요. 남편은 잘할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했지만 '부부 교사의 아이가 왜 저러나'라는 말이 싫어 딸을 다그치기 시작했죠. 딸은 점점 집 밖으로 나도는 등 반항했고 부부 싸움도 잦아졌습니다. 이 모습을 본 두 아들도 집에선 짜증만 낼 뿐이었어요."

가족의 보금자리는 어느새 하숙집으로 변해갔다. 가족 모두에게 집은 편안한 곳이 아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부부는 고민 끝에 인생 후반기를 새로 설계해야 할 때라는 마음을 먹었고, 아이들에겐 교실 밖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이 세계여행. 부부의 부모만 그 선택을 믿어줬을 뿐 대부분 주위 사람들은 '미쳤느냐'고 말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행 비용은 부부의 퇴직금 2억여원으로 충당키로 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배낭여행이라 두려움이 앞섰다.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한 달간 인도와 네팔 등지로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는 2008년 9월 6일 대한민국 땅을 떠났다.

"연습 삼아 떠난 여행에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특히 아이들 모습에 내심 감탄했습니다. 체력은 물론 낯선 음식에 적응하고 숙소, 교통 등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우리 부부보다 낫더군요. 늘 챙겨줘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세계여행을 시작했죠."

◆여행 속에서 길이 보이다

"서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예상대로 세계여행은 쉽지 않았다. 계획 따라 진행되지 않는 것은 둘째 문제. 일상은 크고 작은 다툼의 연속이었다. 가족이라 해도 모두 성격, 취향이 다른 다섯 명이 24시간 붙어다녀야 했기 때문. 그러다 어느새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집에 있을 때는 다툰 뒤 자기 방, 학원 등으로 가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여행 중엔 그럴 수 없잖아요. 앙금을 풀지 않으면 함께 여행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끊임없이 대화하고 지켜보다 보니 각자의 생각, 성격, 취향을 알게 됐죠. 대부분 다툼은 상대가 틀린 게 아니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도 느꼈고요."

특히 부부는 여행 과정에서 아이들마다 개성과 장점이 뚜렷하다는 걸 실감했다. 큰딸 윤영(22) 씨는 대인관계가 유달리 좋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관심이 많다는 점, 둘째 은택(21) 씨는 지도 한 장만으로도 낯선 길을 잘 찾는 등 공간지각능력이 뛰어나다는 점, 막내 은찬(19) 군은 환율 계산과 가격 흥정 등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소질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또 부부는 자신들이 지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쳤던 방식에서 한 발 벗어나 진로,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족은 2010년 2월 7일 귀국하기까지 2년여 동안 아프리카, 남미와 북미, 유럽 등지를 돌았다.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 외에 이국적인 풍경을 보고, 낯선 이들을 수없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이 준 또 다른 선물. 부부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에서 보낸 3박 4일은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붉은 모래사막과 어우러진 저녁노을은 한 폭의 그림이었어요. 모래 속에서 살아가는 도마뱀을 보면서 강인한 생명력도 느꼈습니다. 가난 때문에 신혼여행도 가질 못했는데 아이들이 나중에 이곳으로 신혼여행을 보내주겠다는 말을 해줘 감동했어요. 이젠 '우리 부부를 이해해 주는구나' 싶었죠."

◆다른 교육 방식에 눈뜨다

2010년 2월 7일, 가족은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는 각자 설계한 인생 항로를 따라 새로운 여정에 나섰다. 옥 씨는 진로 교육, 박 씨는 부모 교육으로 방향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해 6월에는 가족의 이야기와 여행 경험담을 녹여 낸 책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를 펴냈다.

학교를 자퇴한 채 여행길에 올랐던 부부의 자녀들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모두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각자 마음먹은 길을 걷고 있다. 큰딸의 꿈은 토털 미용 사업가. 병원 코디네이터, 피부미용사, 비만관리사 자격증을 딴 뒤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영학 독학사 과정을 공부 중이다. 둘째는 CAD(컴퓨터 지원설계) 자격증을 땄고 방위산업체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 CEO가 꿈이 된 막내아들은 전산회계, 기업회계 자격증을 취득하고 회계사무소에서 2년째 근무 중이다. 돈을 모으면 경영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갈 작정이다. 모두 부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돈을 벌어 꿈을 향해 한 발씩 내딛고 있다.

"우리 부부의 도움 없이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어요. 아이들을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죠. 아이들도 우리를 이해하고요. 지금 우리 가족은 다들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세계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깨어진 가정은 회복되지 않았을 거예요."

올해 1월 부부는 경기도 성남에 '가정과 교육 세움터'를 만들어 상담을 받고 전국을 돌며 자신들이 실패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학부모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고 있다. 그들은 학부모, 교육자들에게 교육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속도에 매몰되다 보면 학생들이 행복할 수 없을뿐더러 혼자 설 힘을 잃는다는 것. 다양한 개성을 인정하면 각자 삶을 살아갈 의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여행 중 한국 청년들을 만나면 안타깝더군요. 한 30대 청년은 대기업에 다니다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란 생각에 사표를 던지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아직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어요. 특히 학부모들에게 강조하고 싶어요. 진학보다 자녀의 진로부터 함께 고민해주세요. 자녀와 소통하는 법도 배우고요. 그래야 뒤늦게 후회하지 않습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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