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집중 인터뷰] 정몽준 전 대표

입력 2012-06-01 16:00:17

"참모 많아도 본인의 OS 없는 분은…대통령 되면 위험하죠"

'잠룡(潛龍).' 아직 하늘에 오르지 않고 물 속에 잠겨 있는 용(龍)이다. 대선출마를 준비 중인 예비주자들은 '잠룡'이다. 당내 경선을 거친 용들은 12월 대선에서의 승천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는 잠룡은 오직 한 마리뿐이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61)는 10년째 잠룡 신세다. 2002년 16대 대선 때 출사표를 던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대선후보직을 사퇴한 후, 10년 만에 대권도전에 나섰다. 중앙선관위에 대선예비후보 등록도 마쳤다. '대선재수생'이다. 10년 전과 상황은 달라졌다. 그 때는 지금의 안철수 서울대 교수처럼 한 때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다크호스'였지만 지금은 한자릿수의 지지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약룡'(弱龍)이다. 2002 한일월드컵의 후광을 업고 단기필마격으로 출마를 감행했다면 이번에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것도 달라진 점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제대로 대권수업을 한 것인가. 정 전 대표의 '싱크탱크'격인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정 전 대표를 만났다.

"10년 전에는 (사실상)무소속이었고 현역의원 한 명 없는 단기필마였다. 지금은 당내에서 박근혜 의원(그는 박 전 대표에 대해 아직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며 박 의원으로 부르겠다고 했다)과 비교해서는 세력이 작다고 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아주 큰 세력이다. 그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쪽이 모두 저에 대해 흑색선전을 했다. 용감했다면 용감했고 정치권을 너무 쉽게 봤다면 쉽게 봤는데, 지금은 최소한 공개석상에서는 새누리당이 나에 대해 흑색선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시 가족사는 물론이고 국정감사를 통해 동료의원들이 자신이 축구협회에서 몇백억원을 횡령했다는 비난 공세를 하고 '붉은 악마' 회장에게 자신을 지원해달라고 협박했다는 등의 흑색선전까지 해대는 통에 샌드위치 신세가 돼 혼줄이 났다고 밝혔다.

자신을 둘러싼 연예인들과의 각종 스캔들 소문에 대해서는 "지난 해 출간한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이란 책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진실 혹은 거짓(True or Not)' 코너를 만들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던 사례까지 들면서 자신도 그런 코너를 만들 생각까지 했다"며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나서서 아니라고 해보았자 오히려 소문만 키우게 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7선 국회의원으로 19대 국회 최다선인 정 전 대표는 자신이 경영하던 현대중공업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울산에서 13대부터 내리 5선을 한 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한 후 18대 때 서울 동작을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의원과 맞붙은 데 이어 지난 4'11 총선에서 수성(守城)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보다 2, 3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던 시절의 현대중공업을 직접 경영하기도 한 CEO였던 그는 전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최고의 NGO 단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17년간 지내기도 했다. 화려한 그의 이력은 대선주자로서 손색이 없다.

박 전 대표와 경선을 해야 하는 숙명이지만 박 전 대표와 그는 서울 장충국민학교 동창사이로 인연을 맺었다. 그때는 서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인연은 박 전 대표가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테니스 모임을 통해 알게 됐다. 함께 테니스를 치고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고 박 전 대표의 생일축하모임에 초대받기도 했다.

2002년 두 사람은 각각 서로에게 한 차례씩 정치적 도움을 요청했지만 서로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정 전 대표는 "박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서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며 "박 의원이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후보를 보고 찍지 박 의원이 다녀도 찍어주지 않는다고 대꾸하면서 거절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치적인 판단을 하고 도와주고 했어야 하는데… "라고 아쉬워했다.

그 해 10월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정 전 대표는 박 전 대표의 지원을 필요로 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박 전 대표는 두 사람간의 회동 후 일주일 뒤 한나라당으로 복당했다. "복당하기로 결정했다면 저를 그 때 만날 필요가 없었고 저를 만나러 오시면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아서)저도 굉장히 당황했다."

정 전 대표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화를 걸어와서 '서울시장에 관심이 있느냐'며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할 의사를 타진했지만 '관심이 없다'며 거절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대선후보 선출방식인 '오픈프라이머리'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주머니에서 메모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했다.

"미국에서는 워싱턴주까지 독립된 주로 보면 51개 주인데 완전국민경선인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는 곳이 25곳으로 당원들만 투표하는 '코커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거는 아주 좋은 선거운동의 기회인데 저한테 유리하다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당 대선후보가 누가 되든지 간에 본선경쟁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는 후보를 대선 120일 전에 선출해야 한다고 당헌에 나와있는데 그러면 8월에 해야 한다. 그런데 저 사람들(민주당 등 야권)은 9월에 후보경선을 하고 그 다음에 안철수 교수하고 10월에 하려고 한다. 그러면 저쪽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두 번이나 하고 본선을 치르게 되는데 어느 쪽이 유리하겠느냐."

그는 "임명직 당직자까지 (오픈프라이머리를) 반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다가도 "본인에게 좋은 것인데…박 의원이 생각을 바꿀 것으로 기대한다.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말을 흐렸다.

박 전 대표는 그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넘어서야 하는 '최종관문'이다.

"국민들이 박 의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저도 박 의원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이 시작됐다.

"우리나라 IT업계의 제일 큰 약점은 제대로 된 운영체계(OS)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을 꺼낸 그는 "참모가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OS없는 최고지도자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를 겨냥한 듯 했다. "그런 것을 알기 위해서 경선을 하는 것이고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하려면 오픈프라이머리를 해야 한다. 우리끼리 모여서 경선을 한다면 어떻게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를 끌수 있느냐."

그는 "박 의원은 2007년 경선에서 혹독한 검증을 받았다고 할 수 없다. 그 당시는 친박계가 끊임없이 이명박 후보에게 사기꾼, 전과자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 후보가 혹독하게 당했다"며 "이제 1위 주자니까 본인이 검증을 받아야 한다. 검증은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박 의원은 주장이 굉장히 강하고 본인이 세종시 문제 때도 그렇고 오픈프라이머리 문제에 대해서도 '그 때 여러 사람이 중지를 모아 결정한 것인데 왜 바꾸느냐' 이런 식으로 주장이 강하다. 바깥에서는 본인이 결정한 것을 다른 사람이 바꾸라고 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고 평가를 하는데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도 지적했다.

대권도전에 나선 그는 여전히 자신이 경영하던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다. 선친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재벌 2세' 이미지는 대선주자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그래선가 그는 지난 해 사재 2천억원과 범현대가의 출연 등을 통해 6천억원 규모의 '아산나눔재단' 설립에 나섰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고 본다. 저 같은 경우, 아버님이 사업을 하고 그래서 기업경영을 하고 해서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았다. 제가 잘하면 그것(재벌 이미지)이 장점이 되고 잘못하면 단점이 될 것이다.

또한 정치인에는 서민을 이용하는 정치인과 서민이 중산층이 되게 도와주는 정치인의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서민을 중산층으로 만든 실적이 있다. 미국에서 케네디와 록펠러 가문이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에서 일을 하듯이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다 공화당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발 더 나아가 대선에 출마할 때 재산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물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백지신탁위원회에서 심사를 해서 직무와 관련이 있다면 (재산이나 주식을) 매각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백지신탁위에서 매각하라고 결정한다면 합리적인 절차에 따를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다음 정부의 시대정신은 '국민통합'이다.

"경제적 복지는 시대적 과제다. 우리 국민들이 지역적, 계층적으로 갈라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가 국민을 더 갈라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때 국민들이 축구를 통해 화합하는데 기여했다. 기업에서 일할 때도 경상도에만 공장을 짓지 않고 충청도와 호남에도 지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지금 새누리당에서 정 전 대표 지지세력은 안효대 의원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당 대표까지 역임했지만 그의 리더십은 분명하게 각인되지 않고 있다.

"당내 지지세력이 약하다는 것은 제가 당에 들어온 지 5년밖에 되지 않았고 이 정도면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누가 나를 내쫓으려고 하는 지는 모르지만 나갈 생각이 없다.(웃음)"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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