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는 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환자는 누구나 자신이 응급환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은 생명이 위독한 환자부터 먼저 돌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여 자신이 제때 진료받지 못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병상정보를 볼 수 있는 모니터에는 이미 응급실 잔여 수용환자가 마이너스(초과)를 표시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당신은 과연 응급환자?
이달 27일 5살 남자아이를 안은 아버지가 119구조대와 함께 한밤중에 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다. 외관상 큰 상처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함께 장난을 치다가 손목을 갑자기 당겼는데 아이가 아파해서 119구조대를 불렀다는 것. 접수한 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왜 아이가 아프다는데 빨리 치료해주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언성을 높였다.
정신없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간호사에게 한 환자는 "등이 뻐근하니 와서 두들겨 달라"고 채근하다가 급기야 "환자를 무시하느냐"며 고함을 쳤다. 다른 환자는 응급실 직원을 불러 "담배를 피우러 가는데 수액을 들어 달라"고 했다.
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밤에는 술을 마시고 넘어져서 응급실에 오는 환자도 많다"며 "비응급으로 분류되는 경증환자가 늘어나서 정작 응급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나 긴급 환자를 돌볼 수 없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응급의학 전문의 태부족
한 응급실 관계자는 "응급실에 온다고 모두 응급환자는 아니다"며 "하지만 아무런 처치도 않고 돌려보내면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고, 돌아갔다가 상태가 갑작스레 악화되는 경우도 있어 그냥 돌려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실제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 중 절반가량은 응급이 아니고 단순 처치 후 귀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1'2차 병원을 찾아보지도 않고 곧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오는 환자가 너무 많다"고 했다.
2010년 기준 전국의 응급의학 전문의는 841명으로, 의사 1명당 인구 5만7천여 명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지역 응급의학 전문의는 24명으로, 1명당 10만여 명을 감당해야 한다. 전국 평균보다 2배가량 많다. 특히 5개 대형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병원 응급센터의 경우, 응급의학 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대구의 인구는 전국 대비 5.07%. 하지만 지역 응급실 병상 수(263개)는 전국(7천359개) 대비 3.57%에 그쳤다. 응급의료수가가 낮아 병원 수익에 악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해도 지역 병원들이 유난히 응급실 운영에 관심이 적다는 의미다.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최근 응급실 업무량이 갑자기 늘어나 담당 간호사를 증원했다"며 "하지만 병원 수익이나 다른 진료과와의 형평성 때문에 응급의학과 인원만 늘릴 수도 없고, 실제로 응급의학 전문의 구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지역 네트워크 통해 응급실 문제 해결
대구시도 올해는 지역 대형병원의 응급실 과밀화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보고, 해소 방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는 지역 5개 대형병원의 응급실 환자분류실과 소아진료실을 설치하고, 응급병상을 늘리도록 했다. 또 당직전문의 보강, 간호사 및 응급구조사 신규 채용, 병원 간 핫라인 구축으로 응급실 기능 강화와 비상진료 체계를 유지했다.
올해는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응급의료 네트워크 구축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다. 응급실 과밀화지수(침상당 환자용적)는 시간당 응급실 허가 병상당 평균 체류환자 수를 뜻한다. '병상당 환자 용적이 1'이라는 의미는 1년 24시간 내내 병상 1개에 체류환자가 평균 1명으로 유지된다는 것. 지역 5개 대형병원 모두 과밀화지수가 1.0이 넘는다.
김영애 대구시 보건과장은 "응급의료 네트워크 구축 사업은 대형병원에서 수준 높은 초기 진단 및 치료를 한 뒤 지역에 있는 다른 병원의 입원 병상을 이용해 중장기 치료를 제공하자는 것으로 응급실 과밀화를 지역 전체 병원의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전종훈기자 cjh49@msnet.co.kr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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