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보리문디' 분발합시다

입력 2012-05-29 07:59:29

국회에 '보리모임'이라는 친목단체가 있다. 대구경북(TK) 출신 국회의원 보좌진의 모임이다. TK 출신이 아니어도 TK 지역 의원실에서 근무하는 보좌진도 준회원으로 받아주고 있다. 이 모임은 야당 시절이었던 2004년 대구경북 정권 탈환에 밑거름이 되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의원들은 대권주자 중 누구를 따를 것이냐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만 보좌진만은 계파로 나뉘어 다투지 말고 역할 분담과 정보 공유를 통해 '지역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하자는 소명감으로 뭉쳤다. 실제 보리모임은 2008년 지역 대통령이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대선을 불과 7개월 앞둔 시점에서 그들의 심경은 참담하다. 믿었던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가 신통치 않으면서부터다. 얼마 전 선거가 끝나자마자 거액의 금품수수 혐의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야당에서 일컫듯 이들은 명실상부 현 정권 권력 서열 3위와 4위다. 게다가 권력 1위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마저 의혹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다.

정권 말기엔 어김없이 권력형 비리가 등장했다지만 이번 사태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보리모임 회원들은 온통 '멘붕'(멘탈 붕괴) 상태다. 한 회원은 "530만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원내 의석이 3분의 2에 가까운 여당 의석을 확보하는 등 출발은 찬란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을까, 또 야당 시절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등의 걱정뿐이다"고 했다. 다른 회원은 "10년 좌파 정권을 마감한 뒤 최소한 15년은 우파 정권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었으나 지금 상황이라면 당장 올 연말 대선에서 권력을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도 TK 쪽 얘기는 온통 잿빛이다. 개원도 하기 전에 무수한 얘기들을 만들고 있는 TK 예비 국회의원들 때문이다. '제수씨 성폭행 의혹' 당선자의 최근 교통사고는 검찰의 기소 시기를 늦추기 위한 자작극이라는 소문부터 대구의 한 당선자는 '주사'(酒邪)가 거의 민폐 수준이라는 얘기, 다른 당선자는 집안 단속을 하지 못하면 4년이 지옥일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예비 국회의원들을 둘러싸고 이렇게 심각한 잡음과 소문들이 일었던 경우가 있었던가?

7개월 후엔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를 가리는 중요한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태평하게 현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거나 부끄러운 소문이나 곱씹을 때가 아니다. 솟아날 구멍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19대 국회를 맞이해 보리모임 첫 회동이 열렸다. 회원들은 모임이 처음 결성된 2004년 "대구경북 정권 창출에 밑거름이 되자"던 때의 초심을 곱씹어보자는 이야기를 한목소리로 냈다. 한 회원은 "여의도에서의 시작을 야당으로 출발했는데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되찾아온 정권인데 쉽게 내줄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도 "현재 여야 상황이 대선에 유리하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TK가 결집해 지금의 상황을 반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희망대로 연말 '힘의 결집'을 통해 정권 재창출에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 보리문디들~, 분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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