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 보여온 충격적 행태를 설명하는 데 흔히 동원되는 개념은 극단주의(extremism)다. 그 정당을 장악했던 '당권파'가 극단주의 세력이어서 그렇게 규범들을 무시한다는 얘기다.
그런 설명을 펴는 사람들은, 극단주의 세력이 무력하게 되면, 통합진보당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우파에도 극단주의 세력인 극우파가 있으며 문제가 된다는 얘기도 한다. 이어 극단주의 세력들은 비슷한 행태를 보이므로, 중도적 세력이나 온건한 세력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으로 결론을 삼는다.
이런 종류의 설명은 대한민국 체제 아래서 잘살면서 그것을 유지하는 데 투자를 전혀 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무임승차자'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일 터이다.
극단주의는 특정된 내용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저 어떤 이념이나 주장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것을 미리 평가할 수는 없고 내용에 따라서 선악이 결정된다. 극단주의는 흔히 거대한 악행들과 연상되지만, 거대한 선행들도 대개 극단주의에서 나온다. 외국의 칩임에 대한 저항이나 압제에 대한 봉기는 이내 떠오르는 예다. "자유의 수호에서의 극단주의는 악이 아닙니다"(extremism in the defence of liberty is no vice)라고 미국 대통령 후보 배리 골드워터는 외쳤다.
극단주의에 대비되는 중도나 온건이 늘 옳은 것도 아니다. 본질적 중요성을 지닌 일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태도가 자랑스러울 수 없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서 미온적인 태도가 미덕일 수 없다. "정의의 추구에서 온건은 미덕이 아닙니다"(moderation in the pursuit of justice is no virtue)라고 골드워터는 지적했다. 비록 정적들에 의해 위험한 극단주의자로 몰려서 대통령 선거에선 졌지만, 그는 만년에 지혜로운 지도자로 추앙을 받았다.
통합진보당의 본질적 문제는 극단주의 세력을 품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전체주의를 추종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이념인 자유주의에 적대적인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그 정당이 보이는 충격적 행태의 뿌리다. 설령 종북주의자들이 밖으로 쫓겨난다 하더라도, 그 정당은 대한민국의 유지와 번영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조만간 극단주의자들이 그 정당을 다시 장악할 것이다. 이념이나 교리는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경향을 품고 그래서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마련이다.
우파인 자유주의에도 당연히 극단주의가 있다. 자유주의는 사회적 강제를 되도록 줄여 개인들의 자유를 한껏 늘려야 된다는 이념이므로, 그것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면, 정부를 극도로 경계하고 시장에 아주 호의적인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ism)가 된다.
자유주의와 전체주의가 다르므로, 극단주의의 선악도 당연히 다르다. 극단적 전체주의는 가장 사악한 체제를 낳았지만, 극단적 자유주의는 늘 시민들이 자유와 풍요를 누리도록 도왔다.
전체주의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이 사실을 감추려 애쓴다. 그들은 파시즘이 극우파라고 주장하면서, 우파도 사악한 극단주의로 변태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같은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는 자유주의가 아니다. 이름 그대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결합한 전체주의의 한 분파다. 정치적으로 개인들을 억압하고 법의 지배와 재산권을 부정하고 자기 민족만을 높이고 소수 민족들을 박해했으며, 경제적으로는 시장을 억압하고 명령경제를 지향하고 자유무역에 적대적이어서 자급자족(autarky)을 지향했다. 이런 이념이 어떻게 우파일 수 있는가?
불행하게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자신들이 공산주의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세력이라고 선전한 까닭에 민족사회주의는 우파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냉전 기간엔 소련 정보기관의 오정보(misinformation) 전술로 그런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극우파는 자유방임주의지 민족사회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는 것이 긴요하다.
이념은 본질적 중요성을 지닌다. 전체주의 정당의 문제를 그 안의 극단주의 세력의 문제로 여긴다면, 우리는 그런 정당이 국회에 진출하게 된 사정을 깊이 반성할 계기를 잃을 것이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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