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승리 위해 지분 주더라도 '우파 연대' 해야…세 결집 내가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아 정권을 잡았다. 당시 DJ 입장에서 JP는 악마였고 JP도 DJ를 마찬가지로 봤다. 그런데 JP는 YS가 섭섭하다며 DJ가 내민 손을 잡아 총리와 각료 지분 절반을 받았다."
김무성(61)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오는 12월 대선에서 우파의 결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그거 안 하면 절대 지게 되어 있다"며 "지분을 줘서라도 연대를 해야 하는데 본선에서 (우파세력을 결집시키는) 그런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의 최측근 인사가 "김무성은 정치를 장사로 하나"라며 한때 자신을 비난했던 기억을 복기하면서 그는 "주고받는 것은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분을 주는 것이고 그것이 정치"라고 정리했다. 우파를 결집시키기보다는 그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고언'(苦言)이다.
'친박계 좌장'이었던 김 전 원내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공천탈락이 가시화되자 불출마를 선택, 박 전 대표가 과반의석을 확보하면서 총선에서 승리하는 데 숨은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가 무소속이나 선진당 등 군소정당과 결합, 새누리당 공천탈락자들을 규합해서 출마할 경우, 새누리당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우려되던 상황이었다. 4년 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공천에 탈락하자 탈당해서 '친박'을 전면에 내걸고 무소속으로 출마, 4선 고지에 오르는 데 성공했던 것과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사실 그가 박 전 대표가 주도한 이번 총선에서 공천 탈락이라는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은 2010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극적으로 협력, 박 전 대표의 의중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그는 "그때는 우파가 집권한 직후의 선거였지만 이번에는 총선 후 대선을 치르게 되는 정반대의 상황"이라면서 "우파의 재집권만 생각했다. 내가 출마해서 우파를 분열시키면 재집권이 어렵고 박 전 대표에게도 너무 큰 상처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무소속 출마를) 접었다"고 말했다. 좌장을 인정하지 않는 박 전 대표와 정치 보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좌장정치에 익숙한 김 전 원내대표의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5선의 문턱에서 좌절한 그에게서는 스스로 모든 권력을 내려놓아야 했던 중진 정치인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후련함과 아쉬움, 비릿한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래선가 출가한 딸이 살고 있는 중국 상하이(上海)를 방문하고 돌아온 다음 날 만난 탓에 깎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과 검은 선글라스를 낀 그는 마치 '영웅본색' 같은 홍콩영화 속 비운의 주인공 저우룬파(주윤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불출마 회견문을 꺼냈다. 이 회견문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도 했다. 4'11 총선 후 돌출한 통합진보당 사태를 통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를 통한 좌파 집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우파의 재집권을 위해서는 우파의 결속과 단결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따라 정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상도동계, 혹은 YS계로 분류된다. 1980년대 초반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하면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박 전 대표와는 박 전 대표가 사무총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 전까지 별다른 정치적 인연이 없었다. 오히려 유신 시절을 겪은 그는 '반(反)박정희' 정서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전에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차 한잔도 하지 않았다. 대표가 된 박 전 대표가 사무총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나를 잘 모를 텐데 그 중요한 것을 하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몇 번 사양하다가 (박 전 대표가) 오랫동안 지켜봐서 잘 알고 있다고 한 데다 '나를 절대적으로 믿어달라. 간섭하지 말고 사소한 일은 보고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사무총장직을 맡게 됐다. 그때 재보궐선거가 많았는데 공천위에 다 맡겨 후보를 공천, 전승했다. 신이 났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와 나는 이심전심이었다. 서로 쳐다만 보면 다 아는 사이가 됐다. 보고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그는 박 전 대표와의 사이가 벌어지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것도 권력이라고, 이끼가 끼더라. 내 뜻이 왜곡돼서 (박 전 대표에게) 전달되는 일이 잦아졌다. 사실 내 말이 거친 것이 사실이다. 그건 내 약점이다. YS 모실 때도 측근들끼리 모이면 YS를 욕하기도 했다. 그게 (보스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것으로 박 전 대표가 나를 의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서로 존중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박 전 대표와 김 전 원내대표 간의 거리는 벌어져만 갔다. 결정적인 것은 김 전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원내대표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의 갈등 파동에서 이 대통령 편에 선 그는 강을 건널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대통령의 추파는 그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이 정권 초기에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촛불 정국 직후 이 대통령은 정무장관을 김 전 원내대표에게 맡기는 소폭 개각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했다. 그도 정국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청와대 측의 재산 조사서에 동의를 해 준 후 박 전 대표를 찾아 장관직 제의 사실을 알리고 동의를 구했다. 박 전 대표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의 장관 입각은 그렇게 해서 무산됐다.
1년 후 여야 관계가 잘 풀리지 않자 박희태 전 국회의장(당시 한나라당 대표) 등 여권 핵심부는 김 전 원내대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박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구했다. 30분 후 비서실장으로부터 '(원내대표를) 받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는 없었다. 섭섭했다. 이번까지는 (박 전 대표의) 말을 듣겠다고 다짐했다. 박 전 대표가 싫다는데 자존심 구겨가면서까지 원내대표직을 맡을 수는 없었다. 친박 측근들의 왜곡된 보고는 두 사람 사이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사실상 파국과 다름없었다.
백의종군 선언 후 그는 혼자서 뛰었다. 새누리당 후보를 위해 수행원도 없이 전국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선거 막바지에 우파 후보 당선을 위해서는 새누리당 후보일지라도 중도사퇴해야 한다는 기자회견까지 하고 나섰다.
그의 정치적 목표는 어디까지였을까.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 직전 그에게도 당대표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대선 승리 외에 김 전 원내대표의 목표는 없다. 그 이후는 그도 모른다. 그는 담담하게 밝혔다. 자신의 정치적 목표는 국회의장 정도였다고. 대권의 꿈을 꿀 정도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내 팔자에 국회의장이라도 하면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명예 아니냐."
이제 그는 좌절된 국회의장의 꿈을 접은 대신 우파 재집권을 위한 역할만 생각하고 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시중의 우스개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는 더 바빠진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박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로 화제가 넘어가자 김 전 원내대표의 자세가 조심스러워졌다.
"내 스타일이 옳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정교한 플레이를 하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큰 물줄기를 잡는 스타일이다. 조화가 잘 되면 좋은데 과거에는 잘됐다. 이번 본선에서는 진짜로 나는 반대급부에 대해서는 생각이 없다. 오로지 우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고 우리당 대선주자들이 선전해서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총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후보가 되지 않겠나."
새누리당 사무총장에 최경환 의원 대신 같은 친박계인 부산 출신 서병수 의원이 기용된 것에 대해 그는 "최 의원이나 박 전 대표로서는 잘된 선택"이라면서도 "사무총장을 중립적인 인사로 내세우는 것이 더 모양새가 좋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권력을 알아야 한다"며 "MB정권이 일 잘했다고 하면 돌팔매질 할지도 모르지만 일은 잘했다"며 "잘못한 것이 있다면 공권력 집행을 잘하지 못했던 점"이라고도 평가했다. 5년 전 이 정권의 2인자였던 이재오 의원과 5년 전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후 만나서 건넸던 이야기도 끄집어냈다.
"권력은 가까이 가면 타죽고 멀어지면 얼어 죽는다는데 2인자인 당신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길게 가려면 나서지 말고 몸을 숨겨라"고 충고를 했다. 박 전 대표가 경선에서 승리했을 경우, 성명서를 내고 한 달간 외국에 나가 있으려고 했다는 뒷얘기도 털어놓았다. 성명서는 박 전 대표에게 경선과정에서 가장 멀었던 사람을 기용하고 당을 화합시키고 그 다음에는 집권 후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였다.
박 전 대표의 인사 스타일도 욕을 먹고 있는 이 대통령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세간의 평가를 전하자 "허허허"라고 웃더니 "아직 미래의 일인데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않나"라며 가볍게 웃어넘겼다. 박 전 대표와 김 전 원내대표와의 틀어진 관계가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복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 전 대표의 측근 그룹에서 김 전 원내대표를 대신할 수 있는 중진 정치인이 없다는 점은 향후 대선가도에서 그가 전면에 복귀할 수는 없어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의 기반이 되고 있다.
서명수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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