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송춘사(送春詞)

입력 2012-05-24 11:05:20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고도,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이 내 몸이 아무리 아쉽다기로, 돌아서는 님이야 어이 잡으랴,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늙고, 이 내 몸은 시름에 혼자 여위네….' 김소월(金素月)의 시(詩) 구절이다.

속절없이 가는 봄을 잡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을, 정든 님을 보내야 하는 애달픈 심사를 이만큼 잘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봄이란 계절이 그렇듯, 우리네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지나고 보면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30℃를 오르내린다. 아직도 음력으로는 4월 초순인데 봄날은 어느덧 가버렸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야 잠 못 들어 하노라.' 고려 때 문신 이조년처럼 봄밤의 정취에 잠 못 이루던 일이 엊그제인데 봄꽃은 스러진 지 오래이고, 산천은 이미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도 젊은이들에게 학문에 힘쓸 것을 권하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덧붙였다.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연못가의 봄풀이 채 꿈도 깨기 전에, 섬돌 앞의 오동잎은 어느새 가을 소리인고.

그러고 보면 계절은 이처럼 변함없이 오고 가는데, 사람들은 한낮 봄 꿈에만 취해 있는 게 아닌지. 지금의 내 젊음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영원할 것이라는 미망에 빠져 있는 것이다. '연년세세화상사(年年歲歲花相似) 세세연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이란 유명한 시구가 있다.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하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구나'란 뜻으로, 중국 당나라 때 유정지가 지은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의 한 구절이다. 인간의 부귀영화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인데, 무얼 그리 애면글면 붙잡으려 애를 쓰며 살아왔던가.

요즘 우리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며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일부 정치인과 종교인들은 봄을 어떻게 보냈는지. 계절이 오가는 길목에서 함께 음미할 만한 시가 있다.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의 송춘사(送春詞)이다. '일일인공로(日日人空老) 연년춘갱귀(年年春更歸) 상환유준주(相歡有尊酒) 불용석화비(不用惜花飛)' 날마다 사람은 하릴없이 늙어 가고,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오누나, 기쁘게 술통 마주하고 있으니, 꽃잎 날린들 아쉬울 게 무엇인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