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입시철이 다가오면 온 사회의 관심을 받는 물건이 있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하여 이를 물건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점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자 욕망하고, 때로는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도 되기 때문에 물건 치고도 매우 인기 있는 물건임에 틀림없다. 대학교 배치기준표가 바로 그것이다. 수험생 대부분은 이 기준표에 따라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적성'(適性)이 아니라 '적성'(적당한 성적)에 따른 결정이다.
그러다 보니 의과대학과 같은 특정 분야에 수험생들이 성적 순으로 몰리는 안타까운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고소득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직업에 우수한 인재들이 몰려드는 것은 시장의 원리에 따른 자연적 현상이고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 누가 나서서 말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성적 순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면 직업의 귀천을 받아들이는 현상이 고착화되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1만여 개의 직업이 있지만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직업관 탓에 수험생이나 부모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20개 안팎에 불과하다.
그러다 보니 이들 직업을 둘러싼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다수의 '루저'(loser)를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낳게 되는 것이다. 지금 모두가 우려하는 학교 붕괴라 일컫는 모습들, 가볍게는 공부시간에 엎드려 자는 데서부터 심각한 일탈행동들까지도 그 근원을 따지고 보면 자신의 눈에 비친 미래가 이러한 패배자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교육 문제의 해법은 진로교육에 달려 있다. 최근 정부기관과 언론을 중심으로 진로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그 폭을 넓혀 가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교육의 모습은 혁신적으로 바뀌어 나가야 한다. 그것은 진로 교육을 중심으로 교육의 새판을 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우리 학생들이 방황을 멈추고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위해서 교육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희갑 대구시교육청 교육과정운영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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