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보세요, 계명대 ROTC 5인방
빳빳하게 각이 잡힌 하얀색 셔츠와 남색 스커트에 베레모를 쓴 제복 차림으로 "충성!" 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은 씩씩한 학군사관후보생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속칭 '007 가방'이라 불리는 곳에서 조그마한 손거울을 꺼내더니 요리조리 얼굴을 살피며 재잘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20대 여대생이었다.
"군인의 꿈과 캠퍼스의 낭만 둘 다 놓칠 수 없다"고 당차게 말하는 여성 5인방이 있다. 나현선(계명대 경찰행정 3년), 안정인(경영정보 3년), 이주현(경찰행정 3년), 주이슬(언론영상 3년), 박영흔(경찰행정 3년) 학군사관후보생이 주인공들이다. 15일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서 슈퍼우먼을 꿈꾸는 그들을 만났다.
◆동기는 달라도 목표는 하나
이들은 계명대 학군단 최초의 여성 사관후보생들이다. 지난해 31명의 지원자들 중 6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2014년 소위 임관을 목표로 알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들이 군인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동기 대표로 소대장을 맡고 있는 나현선 후보생은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나 후보생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육군 소령 출신이다. "어릴 적부터 전장에서 할아버지가 겪은 체험담을 들으며 자랐어요. 어떤 얘기를 해 주셨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뜨끈한 무언가가 가슴 깊숙이 남았어요. 다른 동기들은 10학번인데 저는 2년 선배인 08학번입니다. 여성 학군사관후보생 1기 선발 공고를 보고 늦었지만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라 생각하고 주저 없이 지원했습니다."
주이슬 후보생은 아버지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주 후보생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참전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군인에 대한 동경심은 물론 친숙함도 얻었다. 그래서 아버지도 외동딸인 주 후보생이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흔쾌히 후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주 후보생은 "언론 관련 전공을 살려 정훈장교가 되고 싶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국제 감각도 기르고 있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종군 기자로도 활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주현 후보생은 해병대의 고장, 경북 포항이 고향이다. 어릴 적부터 돌격 머리에 빨래판 복근을 가진 오빠들을 보며 군인의 로망을 키웠다. "2PM, 비스트 등 요즘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아이돌 그룹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이미 제 주변은 멋진 아이돌로 가득했죠."
박영흔 후보생의 원래 꿈은 경찰이었다. 그러다 군인의 길을 택했다. 대학 생활과 군인의 꿈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학군사관이 끌렸단다. "학군사관후보생은 문무를 겸비해야 합니다. '무'는 체력과 지휘 능력 등 군인의 기본 요건을 뜻합니다. '문'은 지식'인성 등을 뜻하는데 여기에 대학 생활에서 얻는 문화적 감각도 추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공감 능력이 중요시되는 요즘 장교들에게 필수 요건 아닌가요?"
안정인 후보생도 작은할아버지가 군인 출신이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군인이 꿈이 아닌 적이 없었다. 학군사관은 꿈과 현실 사이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줬다. 안 후보생은 "경제적 측면과 직업적 성취감 등을 모두 실현시켜 줄 수 있는 것이 학군사관이라고 생각해 지원했다. 취업이 화두인 요즘 청년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말했다.
◆만만치 않은 후보생 생활
'커다란 007 가방'을 들고 있던 안정인 후보생에게 "아담한 사이즈에 디자인도 예쁜 '여성 학군사관후보생용 한정판 007 가방'을 들고 다니면 좋지 않을까" 하고 묻자 곧바로 "남녀 차별 없이 똑같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불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현선 후보생은 "우리도 20대 여대생이기에 당연히 예쁜 가방을 메고, 유행하는 치마도 입고 싶다. 하지만 사용하는 물품부터 훈련까지 남녀 차별 없이 경험해야 나중에 차질 없이 지휘관 임무를 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후보생들은 남녀 차별 없는 후보생 생활은 물론 졸업과 임관이라는 목표를 위해 두 배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매주 월'금요일에는 군사학 수업을 듣는다. 다른 학생들만큼 학과 수업을 듣고 추가로 듣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여행을 다니거나 쉬는 방학에도 1년에 2번, 하계와 동계 훈련을 받아야 한다. 스펙 쌓기도 게을리할 수 없다. 컴퓨터'한자 등 각종 자격증과 태권도 등 각종 무도 단증도 필수로 따야 한다.
열심히 하는 만큼 학교에서도 인재가 되라며 특별 대우를 해 준다. 계명대는 후보생들이 1년차 때는 국내로, 2년차 때는 국외로 여행을 보내주고, 기숙사 제공 등 각종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즐거움도 가득
"우리 5명이 모이면 당연히 군대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누죠. 요즘은 축구 얘기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나중에 임관하면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를 나누게 되겠죠?"
고단한 후보생 생활이지만 얻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후보생들은 주말이면 남자 후보생 선배들과 어울려 구기종목을 즐긴다. 축구'족구'농구 등 종목도 다양하다. "임관 후 소대장이 되면 소대원들과 어울리고 친해질 수 있는 요소가 바로 구기종목입니다. 할 줄도 알아야겠지만 소대장으로서 규칙을 설명하고 심판도 볼 줄 알아야 하니까 지금 부지런히 배워둬야죠. 이제는 즐기는 수준이 됐습니다. 체력 증진에도 효과적이고요."
"요즘 꿀벅지가 대세잖아요. 후보생 생활을 하면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후보생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체력 증진과 체형 관리의 이점도 누린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7시쯤 교내 학군단 건물에 집결, 다양한 체력 단련 프로그램에 몸을 맡긴다. 학군단은 후보생들의 피트니스 클럽인 셈이다. "후보생이 된 이후로 군살이 빠지고, 몸에 균형이 잡혔어요." 제복도 체형 관리에 도움을 준다. 처음 맞춘 사이즈에서 체중이 늘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알아서 자기 관리를 한다는 것.
올해 3학년인 후보생들의 학과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온 복학생들이다. 그래서 다른 여자 동기들과 달리 군대를 주제로 대화가 잘 통한다고 한다. 오히려 전문 군사용어는 후보생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 모양말'고무링'반합'수통'깔깔이'모포 등 군대 용어는 이제 생활의 일부가 됐다.
캠퍼스 낭만의 핵심은 연애다. 후보생들도 또래 대학생들처럼 '찐'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남자 친구는 대한민국 군입니다. 매우 씩씩하고 믿음직한 녀석이죠." 그러자 옆에 있던 김준동 훈육관이 한마디 거들었다. "제 와이프는 한반도 모양을 닮은 S라인의 조국 양입니다."
◆여성 ROTC의 장점은
"바람과 햇님의 전래동화를 아시나요? 강한 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살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겼습니다. 그 햇살을 닮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춘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여군의 강점으로 섬세함, 유연함이 익히 알려져 있다. 후보생들도 그러한 장점을 갖추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 가지고는 경쟁력 있는 군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후보생이 되고 처음 만난 훈육관인 김준동 소령과 지낸 1년여 시간은 그래서 뜻깊다. 임관 후 14년 동안 전방에서만 근무했던 김 소령은 난생처음 여 후보생들을 맡았고, 후보생들은 아직 맛보지 못한 전방의 경험과 분위기 등을 꼼꼼하게 전수받았다. 곧 다른 근무지로 떠나는 김 소령은 "후보생들과 함께 품은 첫 정이 가장 뜻깊다. 후보생들이 문무를 겸비한 슈퍼우먼이 될 수 있도록 임관할 때까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보생들에게 "나중에 어머니가 될 텐데, 학군사관후보생 출신 엄마의 장점은 무엇일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자식에게 안보의식과 애국심은 물론 체력'의리'책임감'협동심'솔선수범'존중과 배려'리더십 등을 가르치겠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박영흔 후보생은 "얘기한 요소들 모두 후보생 생활을 하며 배우고 또 느끼는 것들"이라며 "엄마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자식에게 주는 존재다. 앞으로 학군사관후보생 출신 엄마가 늘면 우리 자식 세대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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