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로드/신정일 외 11명 지음/현관욱 사진/청어람미디어 펴냄
'길'은 시간과 흔적의 산물이다. 앞서 간 사람들의 손때가 묻고 발때에 문질리며 땅이 속살을 드러낸 곳이 길이다. 그 때문에 길 위에는 사람과 인연, 세월과 여유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속도'와 '효율'을 위해 산허리를 잘라낸 포장길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다. 전국 지자체들이 열을 올리는 '00길'은 없던 길도 만든다며 나무를 베고, 말뚝을 박고, 시멘트로 뒤덮어 거창하게 길을 낸다. 이렇게 낸 새 길은 진한 화장을 덧칠한 광고 모델과 다를 바 없다. 보기엔 예쁘고 '폼' 나겠지만, 광고 모델을 보고 여유와 사색의 시간을 갖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숨가쁘게 몰려가는 현대인들이 왜 옛 길을 찾아 걷는지 도통 모르는 꼴이다.
'소울로드'는 길을 사랑하고 느껴온 12명의 '소울로더'들이 내놓은 각양각색의 이야기다. 직접 만들고, 걷고, 전해온 길 중 국내에서 가볼 만한 길 25곳을 소개하며 길 위에서 느꼈던 다양한 사색의 시간을 펼쳐낸다.
각자 속한 영역에 따라 그려낸 내용도 다르다. 문화사학자들은 길에서 만난 문화유산의 숨결을 느끼고 사라져가는 옛것에 관심을 쏟는다. 예술가들이 형상화한 길은 내면의 서정과 자기만의 기억을 길에 담아낸다. 길을 만든 사람들은 길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과 길 개척의 희열, 길에서 만난 인연과의 추억들을 엮어내고 있다. 길을 걸으며 생각의 끝을 보는 이도 있고, 왼쪽 신장 반을 떼어낸 뒤 살기 위해 걸었다는 이도 있다. 걷기와 함께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거나 고향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 수고를 마다치 않은 작가도 있다.
대구경북의 길도 꽤 눈에 띈다. 팔공산 동봉에서 영천 은해사, 신일지, 운부암으로 이어지는 팔공산 운부암'백흥암 길과 경북 청송~영양~봉화~강원 영월을 잇는 '외씨버선길'과 울진 십이령길, 울진 망양리길이 눈길을 끈다. 자연주의 사진가 현관욱 작가가 촬영한 70여 편의 사진들은 길 위에 선 사람과 그 사람을 품에 안은 자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360쪽. 1만6천원.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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