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이 나주에 터를 잡고 심은 나무
나무 몇 그루를 보기 위해 왕복 1천 리가 넘는 나주를 세번이나 방문했다. 경비며 시간이 아깝지 않으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 옛 사람이 심은 나무는 어렵게 발견되는 화석처럼 그 속에 역사의 흔적이 켜켜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나무가 보고, 느끼고 겪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단 한 가지나마 풀어내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나주시 봉황면 용곡리 월곡마을도 그래서 찾았다. 500여 년 전 대구가 본향인 달성인 운암(雲巖) 배진(裵縉)이 심은 이팝나무(전라남도 기념물 제168호)가 굳건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달성 배씨의 시조 지타 문양공 후 중조 휘 현경 무열공은 고려 태조께서 통합 삼한 시 일등공신이시고 그 후 19세손 진(縉) 운암공은 학문과 덕망이 남다르게 뛰어남으로써 성균관 훈도로 천거되어 많은 제자를 배출하셨다. 진 운암공은 500여 년 전 이곳에 입향하시어 마을 터를 잡아 월곡이라 하고 마을 중심에 이팝나무를 심고 그 후 느티나무도 심어 현재 마을 당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팝나무는 수령 500여 년의 노거수로 매년 5월 상순경에 눈송이처럼 하얗게 꽃이 피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1982년 12월 3일 전남도 지방문화재 10-21-13호로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건립된 달성 배씨 제각이 있었으나 장구한 세월에 노후되어 1920년에 재복원하여 제각명을 원묘제라 칭하고 있다.
본 마을은 봉황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 거리에 있고, 명산인 덕룡산 줄기의 원림산 정기를 받아 옛날에는 부촌으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지금도 근면성실과 융화단결로 넉넉한 인심을 지니고 출향 인사까지도 애향심이 탁월하여 유대를 돈독히 하고 상부상조하는 모범적인 마을이다.
숙원이었던 마을회관이 선정되어 1998년 정부보조금 3천만원과 주민 및 출향인사들의 성금 1천300만원, 합계 4천300만원이 소요되어 준공에 이르렀다. 마을 구성은 1970년대에는 70여 호에 달했으나 지금은 달성 배씨 32호, 강화 최씨 2호, 평택 임씨 1호 등 35호가 정감 있게 살고 있다. 현황은 총면적 69정보이고 임야 37정보, 답 18정보, 전 14정보이다.
비문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신라 여섯 촌장의 한 분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의 촌장이자 우리나라 모든 배씨의 시조인 지타공(祗陀公)을 맨 머리에 소개해 달성 배씨의 연원을 밝힌 점, 이팝나무를 운암이 심었다고 강조한 점, 가구 수의 증감 사항, 구성원의 성씨, 경지 면적 등을 소상하게 기록해 놓아 향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비를 세운(1998년 9월) 배범수님이 오랜 세월에도 변하지 않도록 돌에 새긴 까닭은 후손들이 이 글을 읽고 선대들이 그랬듯이 그들도 조선(祖先)을 잘 섬기고, 고향을 지키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당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처음 정착한 분은 문종(文宗) 연간 문과에 급제해 성환 찰방을 지낸 배두유(裵斗有)였다고 한다. 공은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충간공(忠簡公) 배문우(裵文祐)의 후손으로,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무리를 모으는 것을 보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알고 가족을 데리고 능주(綾州'화순) 대곡으로 은거했다고 한다. 얼마 후 수양이 실제로 단종을 몰아내자 외부활동을 중단하고 자연을 벗 삼아 은거했다고 한다.
후에 예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전생서(典牲署'제물용 가축을 기르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주부(종 6품)를 지낸 아들 서(緖)가 있고. 손자 휴재(休齋) 배상경(裵尙絅)은 점필재 김종직의 문인으로 대과에 급제해 정주 목사를 지내고 청백리에 뽑혔다.
휴재의 장남 배진(裵縉)이 능주 대곡에서 나주 봉황면 월곡으로 이거해 오늘에 이른다. 이팝나무는 입하(立夏)를 전후해 피기 때문에 '입하'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과 꽃이 쌀밥의 옛말 이밥과 비슷해서 '이밥'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전국에는 더 크고 더 품격이 높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가 몇 그루 있다. 그러나 심은 사람이 분명하게 알려진 나무는 이 나무밖에 없다. 이런 점을 볼 때 운암은 우리나라에서 이팝나무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이해한 분이자 또한 가장 먼저 조경수로 활용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돌아오면서 국가 발전의 큰 걸림돌인 지역감정은 씨족을 통해서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본관지가 영남이거나 반대로 호남인 경우 시조 향사일 등에 어른들만 참석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도 동행해(아니면 방학 중 따로 시행해도 무방함) 사는 곳은 달라도 한 뿌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재정형편상 문중이 부담하기 어렵다면 지방정부에서 지원해도 소모적인 경비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대구생명의 숲 운영위원(ljw16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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