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바람의 합작품…사람아, 보기만 해라 탄식조차 방해될지니
나는 미국 로키산맥에서 여정을 시작합니다. 로키 고원지대에 쌓인 눈으로서 저 아래 세상을 굽어보던 나는 언 몸을 햇살에 녹이면서 고향 바다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릅니다. 콜로라도주(州) 북부에서 발원한 나는 콜로라도주와 유타주,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캘리포아니아주를 거쳐 멕시코령 캘리포니아만(灣)으로 흘러듭니다. 무려 2천330㎞의 기나긴 여정입니다.
바다로 향하는 여정에서 나는 와이오밍주에서 흘러내리는 그린강, 뉴멕스코주에서 흘러드는 샌후안강 등 형제강과 합류합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1993)의 배경이 된 몬테주강처럼 유유히 흐르던 나의 발걸음은 유타주를 지나면서 돌연 분주해집니다. 빨라진 나의 물살은 흙과 산을 패어 그 속에 꼭꼭 숨은 붉은 바위의 얼굴을 드러내고 암벽을 깎아 형형색색 모양들로 빚어냅니다.
수억 년에 걸친 조각 활동으로 인해 내 손길 닿는 곳곳마다 기암괴석 비경들이 생겨났습니다. 아마도 조물주께서도 그 현란한 솜씨를 칭찬하실 겁니다. 인간들 사이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세계 명소 1, 2위를 다투는 절경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 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물론 그것이 나 혼자만의 성과는 아닙니다. 조각 작업은 친구 바람도 함께 했지요.
스페인 탐험가가 처음 발견하면서 할 말을 잊은 채 "그란데!"(Grande!)를 연발했다는 그랜드 캐니언은 길이가 446㎞로 서울과 부산 간의 거리(401㎞)보다 긴데, 폭 최고 29㎞ 깊이 1.6㎞나 되는 대협곡의 속살 저 아래 깊은 곳을 살펴보면 도도히 흐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타주에 있는 캐니언 랜즈(Canyon Lands) 역시 내 손길을 거친 곳입니다. 이곳의 광활함과 기이한 풍광 때문에 많은 영화의 촬영장소가 되었습니다. '델마와 루이스' 라스트 신에서 두 여주인공이 차를 몰고 몸을 던진 절벽, '미션 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가 탄 암벽, 2010년 개봉된 영화 '127시간'에서 주인공이 갇힌 협곡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나는 미국 서부의 젖줄이기도 합니다. 남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네바다, 콜로라도, 뉴멕시코, 유타, 와이오밍 등 7개 주 사람들이 상수원으로 나를 이용합니다. 안정적인 물'전기 공급을 위해 사람들은 후버댐, 글렌캐니언댐, 데이비스댐, 파커댐, 임페리얼댐, 라구나댐을 내 길목에 지었습니다. 환경론자들의 반대와 일부 부작용이 없지 않습니다만 이 같은 수역 개발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 서부는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후버댐 건설로 인해 생겨난 미국 최대의 인공호수 미드(Lake Mead)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휴양지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랜드 캐니언(473만 명)보다 많은 640만 명의 방문객이 지난 한 해 동안 이곳을 다녀갔다고 합니다.
물론 내겐 고민도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수자원 고갈 문제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로키 고원에 내리는 적설량이 나날이 줄어들면서 수위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메가폰을 잡았던 감독 겸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는 나의 수자원 고갈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워터셰드'(Watershed)를 제작해 지난 3월 발표했다고 하는군요.
'자연과 사람의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소명입니다. 나는 그 전형을 보여줍니다. 또한 인간들이 저지른 잘못과 실패의 타산지석(他山之石) 역시 내게서 발견할 수 있겠지요. 내가 누구냐고요? 나는 '콜로라도강'(Colorado River)입니다.
미국 현지에서 글'사진 김해용 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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