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스태프 같은 삶

입력 2012-05-16 07:25:35

아침부터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덩달아 우리의 판단마저도 흐려진다. 일기예보에서는 오후부터 비구름이 북상할 것이라고 했다.

모델의 일정과 날씨 때문에 몇 번이나 연기된 촬영이다. 날씨만 바라보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촬영 세 시간 전부터 현장에 도착해 준비를 시작했다. 공중화장실의 전기를 빼 촬영 장소까지 배선작업을 하고 카메라의 위치와 조명의 강도를 조정했다. 이동차를 깔고 오디오 장비와 모니터를 설치한 후 가상의 인물로 리허설까지 마쳤다.

촬영팀, 조명팀, 연출팀, 메이크업에 각 팀의 보조까지 12명의 스태프는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북상하는 저기압을 고기압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저지시켜 주기를. 주인공이 한시라도 더 빨리 달려와 주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마침내 주인공이 막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장비들을 점검했다. 그러나 주인공이 도착하기도 전에 비구름이 먼저 현장을 덮치고 말았다.

결국 힘들게 장비를 설치했던 12명의 스태프들은 아무런 성과 없이 장비들을 걷어 현장에서 철수해야만 했다. 촬영은 빗방울처럼 수포가 됐다. 내일까지 비는 계속된다고 했다. 날씨와 주인공의 스케줄에 맞추어 다시 촬영할 날을 잡아야 한다. 그 일정을 잡는데 스태프들의 스케줄과 사정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20초, 길어봐야 1분 정도 사용될 주인공의 인터뷰 촬영을 위해 수많은 스태프들은 늘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한다.

영상은, 특히나 광고는 화려하다. 주연 모델은 아름답게 빛난다. 그 화려한 영상과 빛나는 주연 뒤에는 언제나 스태프들이 있다.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영상을 위해 항상 자신들을 감추고 절대 드러내지 않으며 온갖 희생을 감수하는 존재, 그래서 자신들이 돋보이는 것보다 주인공과 영상이 돋보이는 것에 더 만족하고 기뻐하는 존재, 그들이 바로 스태프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스태프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 누군가가 돋보이고 세상이 아름답게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나를 돋보이게 하고 드러나지 않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스태프들이 누구인지 한 번쯤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나만 돋보이려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무단히 스태프로 만들지나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더 나아가 나는 또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한 번이라도 기꺼이 스태프가 되어 준 적이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스태프가 되어줄 때 모두가 빛나는 법이다. 오늘 문득 평생을 나의 스태프로만 사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밥 한 끼 대접해 드려야겠다.

<CF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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