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청 '생애사 기록 100선 사업'

입력 2012-05-12 08:00:00

토박이 살아온 이야기, 도시 역사가 된다

대구역에서 바라본 도심. 북서쪽 방향에 달성공원이 보인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대구역에서 바라본 도심. 북서쪽 방향에 달성공원이 보인다. 매일신문 자료사진
10일 오후 대구 중구 성내동 북성경로당에서 60년 전부터 중구에 거주하고 있는 배상용(83) 씨가
10일 오후 대구 중구 성내동 북성경로당에서 60년 전부터 중구에 거주하고 있는 배상용(83) 씨가 '생애사 기록 100선 사업'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대구 중구 향촌동에는 6'25전쟁으로 피란 문단이 형성되면서 1950년대를 풍미했던 문인묵객들이 드나들던 술집과 다방, 그리고 그들이 뿌려놓은 낭만과 일화가 많이 옅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숨쉬고 있다. 동산동과 계산동 곳곳에 뿌려진 삶과 문화의 향기도 대구시민들과 외지인들의 소맷귀를 골목 곳곳으로 끌고 있다. 대구 중구청은 이달부터 도심의 옛이야기와 현장에 있었던 주인공들의 삶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생애사 기록 100선 사업'에 들어갔다.

◆삶과 이야기 속으로

"스무 살에 홀로 대구에 와서 1954년쯤 북성로에 공구가게를 열었어요. 당시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라 공산품이 귀했어요. 공구 제품을 들여놓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렸어요. 가게를 하며 돈을 벌고, 집사람을 만나 결혼해 지금까지 대구에서 살고 있는 저는 60년 북성로 토박이랍니다."

10일 오후 대구 중구 성내동 북성경로당. 배상용(83) 씨가 60여 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 당시 대구 도심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배 씨의 목소리와 모습을 그대로 녹화했고 인터뷰하기 위해 온 연구공동체 '두루'의 이상율 사무국장이 그의 말을 빠짐없이 수첩에 기록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배 씨는 1950년대 대구 도심의 모습,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물론 그의 일상생활 등 세세한 것까지 쏟아냈다. 당시 북성로, 향촌동에 자주 모습을 보였던 대구 출신 음악가, 화가, 소설가 등에 대한 생생한 목격담도 나왔다.

이 사무국장은 "인터뷰 대상자들이 고령인 점을 감안, 인터뷰 시간을 하루 1, 2시간으로 정했지만 대상자들의 열의가 높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 종일 옛이야기 한마당을 펼치기도 한다"며 "지금껏 몰랐던 대구 도심의 역사가 어르신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민 삶과 함께한 도심

대구 중구청 도심재생지원단이 추진하고 있는 '생애사 기록 100선 사업'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시대 대구 도심 역사를 경험했거나 기억하고 있는 70세 이상 주민 100명을 선정, 인터뷰나 자술을 통해 생애 전반을 기록하는 것이다. 수집된 자료는 향후 역사자료, 자서전 출판 등으로 활용된다. 현재 26명이 선정돼 사업을 진행 중이고, 중구청은 2014년까지 100명을 선정해 자료와 기록을 확보할 계획이다.

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구공동체 두루 소속 연구원들은 팀별로 대상자들을 찾아가 오는 7월까지 인터뷰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인터뷰에 참가 중인 박성삼(74) 씨는 대구 중앙통의 변천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현재 동성로 한일극장과 교보문고 사이에는 사형장이 있었습니다. 사형대로 사용된 큰 고목나무가 있었고, 어른들로부터 사형을 목격했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당시 나는 어려서 현장을 보지는 못했어요."

북성로 공구골목 1세대인 배상용 씨, 대구 중앙통 변천사를 줄줄 외는 박성삼 씨 외에도 계산성당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던 허억 대구 초대시장의 셋째 딸 허귀진(90) 씨, 1970,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던 중구 덕산동 곡주사(옛 성주식당) 막걸리 집을 40여 년간 운영한 정옥순(78'여) 씨 등이 현재 인터뷰에 참가하고 있다.

중구청 도심재생지원단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통해 수집한 역사자료를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만들어 대구읍성 상징거리, 북성로 근대건축물 등 대구 도심의 문화유산 복원 사업에 녹여 넣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인터뷰에 직접 참여해 대구의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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