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실언과 망언

입력 2012-05-11 11:24:19

일본 정치인들의 실언(失言)은 유명하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0년 야나기다 미노루 법무상은 자신의 취임 축하 모임에서 실언을 했다가 야당의 공격을 받고 취임 2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당시 그는 "법무대신은 국회에서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개별 사안이나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답변을 보류하겠다, 법과 증거를 토대로 적절히 처리하고 있다고 말하면 된다"는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이런 실언에 당시 일본 신문들은 '어안이 벙벙하다'(あっけらかん)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말에 어안이란 '어이가 없어 말을 못 하고 있는 혀 안'을 뜻하는데 입이 딱 벌어지는 상황일 때 쓰는 말이다. '앗게라간'은 천연덕스럽다는 뜻의 일본말로 각료가 국회에서 말장난을 해도 통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실언도 역사나 영토 문제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연설에 일가견이 있다는 노다 현 총리의 망언은 현란하기까지 하다. 그는 "A급 전범들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 전쟁 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쟁 범죄자가 합사됐다는 이유로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반대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전쟁 범죄자가 누구라는 건지 요령부득이다.

13일 베이징에서 열릴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 제시를 유보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한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 국가의 책임임을 명확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임을 뻔히 알면서도 한국이 문제 해결에 비협조적인 점을 부각시켜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다.

최근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시를 방문한 일본 영사가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요구하다 거부당한 데 이어 자민당 의원들까지 찾아가 "기림비에 적힌 위안부 수는 어떻게 계산했나, 우리는 그런 숫자를 모른다"며 생트집을 잡다 시청의 반박에 망신을 당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한 칼럼에서 '실언보다 죄가 무거운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천연덕스러움'이라며 정치인들이 이런 무지도 모자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금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일본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대신 하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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