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건축학개론

입력 2012-05-11 11:25:26

"어떤 사람의 집을 가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듯이 집을 지으면서 서로의 취향을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멜로의 구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는 영화 '건축학 개론'의 이용주 감독은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의 삶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집을 짓는 과정'과 절묘하게 접목시켰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건축을 공부하는 시간과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 '아프지만 지워질 수 없는 어떤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점과 실제 건축과정에서 건축가가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조건을 분석하고 디자인하는 프로세스를 통해 '건축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 '무엇을 건축화할 것인가' 하는 관점으로 지우지 말아야 하는 삶의 흔적과 기억들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와 동시에 '고쳐지고 증축되는' 서연의 제주도 '집'은 세트나 배경이 아닌 영화 속의 다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영화감독은 건축을 흔히 기대하고 당연시하는 경제적 가치나 건축가의 이력 등 어떤 특별함으로, 혹은 디자인 즉 예술적 관점에서의 다 지어진 후의 결과로 주목시키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건축학개론'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건강하다. 다분히 선입관을 개입시키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그저 누구나 겪은 첫사랑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건축을 어느 특정한 분야로, 공학이나 예술로 치우쳐 바라본 지금까지의 시각에서 소소하지만 일상 속에 깊숙이 중심되는 우리 삶 그 자체로 인식시킨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의미가 크다.

영화의 소재로 처음 제안된 건축 과정은 제주도의 낡은 집을 '서연'의 대사처럼 '싹 다 밀고, 있어 보이게' 전체를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도 몇몇 대안의 설계 도면과 모형들이 등장하지만, 낯설어하는 '서연'을 위해 '승민'은 새로 짓는 것을 포기하고 집과 대지가 가진 기억들과 오랜 시간 삶의 흔적들을 남기는 방식으로 현재 생활에 맞게 고치고 조금 확장하는 '증축'의 방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영화는 전개되었다. 거실의 벽을 터 수평으로 완전히 열리는 바다를 향한 전망은 접이문의 파노라마로 연출되었고, 차양 역할의 수평 원목 띠는 세련된 현대 건축의 경향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옛날 모습 그대로의 지붕과 벽돌 벽은 그 집 속에 녹아든 시간으로, 또다시 오랜 기간 물릴 집안의 역사로 남았다.

예쁘고 특별한 일반적 시각에서의 건축에 대한 기대와 달리, 이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건축은 '병상의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던 짜고 거친 바닷가이고 세월로 단순해진 인생'이다. 그리고 서연의 새로운 집은 '작은 웅덩이 속 금붕어와 함께 남겨진 어린 발자국'과 '시간과 이야기로 새겨진 붉은 벽돌 위의 눈금자'로 은유되어 읽힌다.

건축과 도시를 위한 가장 독창적인 디자인의 실마리는 항상 개성과 지역성에 기반을 둔 고유성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건축은 건설 과정의 끝으로 매듭되는 형상, 즉 물리적으로 구축된 건물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어진 '그 건축을 통해 이루려 하는 그 무엇'이 결국 그 건축을 다른 건축과 다르게 하고 다른 도시와 다르게 한다. 그러므로 건축 과정 속에서 논의되는 디자인 콘셉트(Design Concept)의 정의도 '무엇을 닮았나?' 하는 외형 중심의 기대에서 '새로운 건축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하는 본질적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너무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극적인 이야기가 반드시 흥행이 잘 되냐, 그렇지는 않거든요. 어쭙잖은 거짓말을 하거나 꼼수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정공법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승민'이 울 때 관객도 따라 울 것이라고 믿었어요"라는 이용주 감독의 영화 이야기처럼, 건축과 도시의 디자인도 규모와 형태의 집착에서 벗어나 조금 소박하고 보잘것없더라도 분명한 의도(Design Concept)와 진정성으로 다가갈 때 시민들의 참여와 공감을 얻을 것이다.

김홍근/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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