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지 않은 내 얼굴 뒤집어 보니 내 경쟁력
400만 명 가까이 본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돋보인 배우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납뜩이'를 연기한 조정석일 것이다. 이달 3일 개봉한 영화 '코리아'에서도 존재감을 보이는 이가 있다. 바로 배우 한예리(28)다.
한예리는 북한 탁구선수 유순복을 열연했다. 연기 잘하기로 꼽히는 배두나는 한예리에게 "나도 꽤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넌 어디서 왔니? 보통이 아니네. 너무 열심히 해서 예뻐"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여기저기에서 그를 향한 찬사가 쏟아진다.
특히 첫 국제대회에 참여한 어린 선수가 긴장하고 주눅 든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눈물을 흘리며 자기 대신 "남한의 현정화(하지원) 선수를 내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 깊다. 너무 연기를 잘해서인지 그를 향한 관심이 높다고 하자 "평소 못 보던 얼굴이고 평범한 느낌으로 인한 신선함에 가산점을 준 건 아닌가 생각한다"고 겸손해했다.
혹자는 '한예리가 진짜 북한에서 건너온 건 아닌가'라고 의심할 정도다. 한예리는 "이 영화를 위해 어느 정도 여성성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됐다"며 "온전히 북한에서 온 탁구선수가 돼야 했는데 그렇게 북한 사람처럼 보였다는 건 칭찬인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예쁘진 않지만 개성 강한 마스크. 대부분의 관객이 그로부터 받는 인상이다. 여배우 가운데 '외모가 예쁘지 않다'는 말을 좋아하는 이가 누가 있으랴. 하지만 한예리는 "예쁘지 않다는 말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며 "사람의 마음은 계속 변하게 돼 있다"고 눈을 반짝인다.
"공효진 선배님도 지금은 무척 예쁘시지만 예전에 예쁘지 않게 나올 때가 있었잖아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친해지면 속속들이 보고 싶고,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대중과 친해지면 '이 친구, 이런 예쁜 모습이 있네?'라고 봐주지 않을까요? 소속사 대표님도 이제 예뻐질 일밖에 없다고 하세요."(웃음)
너무 잘 알려진 대로 '코리아'의 촬영은 힘들었다. 발톱이 빠지고 기진맥진한 게 여러 날이었다. 한국마사회 탁구단의 현정화 감독의 고된 훈련 때문이었다. 특히 다른 배우들보다 먼저 캐스팅된 한예리는 1개월을 더 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7개월여 동안 '지옥'을 경험했다.
"계속 연습을 하니 마찰력으로 운동화가 밀리더라고요. 발이 짓무르고, 물집이 생기는 건 기본이었죠. 앉았다가 일어나서 공을 쳐내는 연습을 하니 허리와 골반은 틀어졌고요. 또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 탁구채를 들어야 해서 어깨가 특히 아프더라고요. 이렇게 아팠을 때는 얼음찜질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파스를 붙여 화를 키우기도 했죠."(웃음)
연습기간 동안 2만 개 정도의 공을 쳤느냐고 하니 "그거보다 당연히 더 될 것"이라고 즉답한다. 세어 보진 않았겠지만 공이라면 진저리칠 정도로 엄청나게 쳤던 것 같단다. "모두 한 번씩은 울었어요. 연습한 게 될 때도 있는데 다음에는 또 안 되더라고요. 속상하기도 하고 연습이 고되기도 해 울었죠."
한예리의 모친이 소속사 대표에게 걱정스런 마음으로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딱 생각한 것만큼 힘들었다고 위안한다.
한예리가 이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처음 영화에 합류했을 때 만날 순 없지만 유순복 선수에게 '이 역할을 잘 마무리하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나중에 유순복 선수가 이 영화를 볼지 모르는데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웃었다. 다짐은 했지만 어렵거나 힘들 때가 많았다. 그때 그를 다독여준 건 하늘 같은 선배인 배우 김응수다. "선배님이 순복이의 정신적인 아버지 역할을 해줬다"며 좋아했다.
한예리는 한예종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를 나온 그는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뒤 박사과정을 밟아 선생님이 될 줄 알았단다. 하지만 영화과 학생들을 위해 무용 안무를 도와주는 것을 계기로 영화에 매료되고 말았다.
아직 연기를 잘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부끄럽다. 그는 무용을 해서 그런지 "'열심히'나 '잘한다'의 기준이 높다"며 "치열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수위를 안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으니 내 기준에 맞추면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하지원, 배두나 선배와 연기를 함께 하게 돼 자극도 되고 많이 배웠다"고 즐거워했다. 전문가다운 모습과 스태프, 배우들과의 관계 등이 선배 배우들이 사랑받는 이유 같단다.
그는 "순복이 탁구를 치며 성장하는 부분이 연기를 하고 난 다음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지금 받은 평가들을 칭찬으로 잘 받아 두고, 다음에 다른 모습으로 보여드리겠다. 순복이를 잊을 수 있을 만큼 그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리아'는 한예리에게 상업영화 도전작이라고 할 수 있다. '기린과 아프리카'(2007)와 '푸른 강은 흘러라'(2008) 등을 통해 그는 이미 독립영화계 스타로 인정받았다. 2009년 박찬옥 감독의 상업영화 '파주'에 출연하긴 했으나 이 영화 역시 예산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다.
'코리아'는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팀이 되는 게 금메달 따기보다 더 불가능했던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 탁구팀의 46일간 비하인드 스토리를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하지원이 현정화, 배두나가 리분희 선수를 연기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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