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본시 그런 것 같다. 별 대수롭잖은데서도 일쑤 서로 의견이 팽팽히 맞설 수 있는 상대가 부부인가 보다. 평소 깨가 쏟아질 듯 알콩달콩 뜻이 맞다가도, 이따금씩 공연한 일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싹 토라져 버리곤 한다. 이럴 땐 생판 남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부부간을 일러 무촌이면서도 가장 먼 촌수 사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우리 부부는 선물 문제로 티격태격 입씨름을 했다. 서로의 뚜렷한 견해 차이를 확인하고는, 씁쓰름한 마음에 끓어오르는 감정의 부글거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내의 의견은 이랬다. 이왕 하는 선물, 값이 어느 정도 선은 되는 걸로 골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야 체면이 서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대뜸 "선물이란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정성이 중요하지 그까짓 체면 따위가 뭐 그리 대수인가."평소 간직해 온 곰팡내 나는 명분론을 들먹이며 아내의 견해를 가로막았다. 아내는 "솔직히 말해 값나가는 것이 더 낫지 무슨 케케묵은 정성 같은 소리 하고 있어요?"라며 당초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왜 좀 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아내의 핀잔을 듣는 순간, 나는 그만 감정이 울컥해져서 채신없이 그의 속물근성을 들먹이고 나섰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어찌 생각하는 것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며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아내도 평상심을 잃은 듯 급기야 나를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인(爲人)이라고 몰아붙였다. 처음엔 단순한 견해 차이로 시작된 다툼이,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나비효과를 불러와 차츰 인신공격으로까지 증폭되어 갔다. 이 감정의 골이 메워지고 다시 종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서로 간에 얼마 동안이나 자숙의 시간을 가져야 할까.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다."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선생이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설파했던 이 말이 오늘처럼 절실히 다가온 때가 없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어느 유행가 가사 한 소절이 새삼 울림을 준다.
정말이지 그런 것 같다.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모르거늘 세상의 그 누가 내 마음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수십 년씩 서로 살을 섞고 살아 온 옆지기조차도. 인간 존재란 어차피 너나없이 고독한 단독자인가 보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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