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사랑이다] "낯선 땅 시집 온 아내, 정말 감사합니다"

입력 2012-05-03 14:38:44

다문화가정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의자와 책상과 소파가 아니라 그 소파에 앉은 어머니의 미소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푸른 잔디와 화초가 아니라 그 잔디 위에서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다. 가정을 이루는 것은 부엌과 꽃이 있는 식탁이 아니라 정성과 사랑을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다. '사랑'은 표현할 때 꽃이 핀다.

◆건강한 가정 만들기

요즘 가족의 해체 현상, 신(新) 가족의 탄생 등으로 인해 가족 구성이 예전과 다르다. 가족이 함께 살기보다는 혼자 생활하는 1인 가구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1990년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9% 정도였다. 하지만 2005년에 20%를 넘어섰고, 2010년에는 23.3%에 이르렀다. 4가구 중 1가구는 '나 홀로 가족'인 셈이다. 물론 사회와 문화가 변함에 따라 가족의 의미도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무엇일까? 건강한 가족이란 하늘과 같이 높은 아버지의 사랑과 바다처럼 모든 것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사랑이 있는 곳. 이런 의미의 가족에 대한 정의는 겉모습은 조금 달라도 시대의 변화에 상관 없이 이어질 것이다. 가족은 비난보다는 용서가, 주장보다는 이해와 관용이 우선되며 항상 웃음이 있는 곳이다. 가족은 모든 가정생활의 운영에 동참해야 하고 서로 존중하며 신뢰해야 한다. 가족은 서로를 지켜주는 최초의 둥지이자 최후의 보루다.

◆다문화가족-보느곡 투안

"투안,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듯 세상은 온통 눈부셨습니다.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열두 살이나 많은 나만 믿고 낯설고 물 선 한국 땅으로 따라나선 당신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대구시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통'번역사로 근무하는 보느곡 투안(30) 씨.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꼭 10년째다. 베트남 호찌민시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따이닌'이 친정이다. 고교 졸업 후 1년 정도 회사에 다니던 중 김봉술(42) 씨와 맞선을 본 후 낯선 한국으로 시집왔다. 스무 살 어린 신부는 대구시 동구 신천동 한옥에서 시부모와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말을 하지 못해 너무 답답했고, 된장냄새가 이상해 음식을 먹는 것도 많이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웠던 일은 한국의 겨울 추위였다. "너무 추워서 잠을 잘 때도 모자를 쓰고 양말까지 신고 잤다"고 고백한다. 당시 남편이 시어머니와 함께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해 남편을 따라 함께 시장에 나가 장사를 도왔다.

남편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향수병과 낯선 한국생활도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시장에서 일하는 것은 태훈(8)·태헌(7) 형제의 엄마가 되면서 중단했다. 대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나가 한국어를 익혔다.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독서치료사 자격증을 따 수성구보건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정식 직원으로 입사해 통'번역 일을 하고 있다. 이젠 모두 '투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남편 봉술 씨도 2년 전 병원에 취업해 건물 관리사로 일하고 있다. 남편은 퇴근 시간이면 언제나 동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 와 함께 퇴근하는 바람에 금슬 좋은 부부로 소문났다. 투안 씨는 지난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했다. 남편은 그 기념으로 경차를 선물했다. 요즘은 투안 씨 혼자 자가운전을 하며 출퇴근을 한다.

시부모 김창수(77)·구순자(72) 씨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지 10년이 되었는데 한결같이 예쁘게 생활하고 있다"며 직장생활을 하는 며느리를 자랑스러워한다. 남편 김 씨는 "우리 가족이 다문화가족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 힘들게 살고 있는 일부 다문화가족들이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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