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골목상권까지 유린하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재벌 개혁'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970, 80년대 '성장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군이었던 대기업이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공룡'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재벌들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영역에까지 뛰어들어 무한 경쟁을 벌이며 지방 골목경제를 집어 삼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기업 프랜차이즈다. 자본을 무기로 한 문어발식 프랜차이즈 사업 확장은 재벌 독점 구조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주변 골목 상권을 초토화시키고 홀로 살아 남아 지역 골목경제 피폐를 부르고 있다.
◆사라져 가는 골목의 추억
지난 수십년 간 대구 도심 상권을 지탱해 왔던 대표 토종 자본들은 고사 직전이다. 자본뿐 아니라 도심 상권에 오롯이 녹아 있던 땀과, 문화, 추억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2006년 4월. 지역 서점업계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던 중앙로 제일서적이 설립 25년 만에 부도처리됐다. 이로써 1998년 분도서점 폐업 이후 청운서림, 하늘북 등에 이어 향토 대표 서점들은 완전히 몰락하고 서울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지역 책 시장을 석권했다.
2010년 1월. 반세기 전(1961년) 대구 자본으로 설립돼 지역 극장가를 대표해 왔던 중앙로 아카데미극장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이에 앞서 지난 수십년 동안 대구 극장가에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아시아'제일'대구'중앙시네마 등이 차례로 자취를 감췄다.
결국 대구 극장가는 롯데(7곳)와 CGV(5곳)로 양분됐다. 지난해 말 롯데시네마가 아카데미 위탁경영에 나섰고, CGV의 현대백화점 입점까지 이어졌다.
2010년 3월 대구의 유통자존심, 반월당 동아백화점마저 팔렸다. 38년 간 지역 토종 백화점의 명맥을 이어왔던 동아가 이랜드그룹의 계열사(이랜드리테일)에 매각됐다. 동아백화점의 매각으로 전국 유일하게 토종 백화점의 명맥을 이어왔던 대구에는 대구백화점 홀로 남았다.
◆'쓰나미' 대기업 프랜차이즈
대구 대표 토종 자본을 잠식한 대기업들은 프랜차이즈 계열사를 통해 과거 소상공인 영역으로 여겨지던 업종에까지 뛰어 들고 있다.
지난 주말 찾은 동성로 일대. 동아백화점 주변 속옷 가게에 '폐업 정리, 속옷 200원'이라는 글귀가 나붙어 있었다. 중앙파출소 주변 화장품 가게에서는 '폐업 대 바겐세일'이라는 확성기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날 대구역~반월당 상가 건물 곳곳은 '폐업', '임대 문의'로 도배돼 있었다. 개점 휴업 상태의 상가들은 주인과 업종이 바뀌어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A여성의류점 주인(35)은 "몇 개월 사이 두세 차례 주인이 바뀌는 점포가 수두룩하다"며 "도심 상권에서 그래도 살아 남는 가게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뿐"이라고 씁슬해 했다.
롯데백화점, 롯데영플라자, 파티, 현대백화점에 이르기까지 잇단 대형 유통 시설의 등장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토종 점포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B의류점 주인(40)은 "동성로에 새로 생기는 대형 유통건물뿐 아니라 주인과 업종이 바뀌는 리모델링 상가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입점한다"며 "프랜차이즈가 들어설 때마다 또 누가 죽어나갈까 생각에 괴롭다"고 했다.
◆유출되는 골목 자본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필연적으로 골목 경제 자본 유출을 부른다. 가맹비, 개설 상담 및 컨설트 비용 등을 본사가 가져간다.
매일신문이 대구역~반월당 도심 상권의 대기업 계열 프랜차이즈 점포를 현장 분석한 결과 재벌 프랜차이즈는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 제과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상권 요지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은 10곳의 프랜차이즈를 거느리고 있다. 엔제리너스(커피숍) 5곳, 롯데리아(패스트푸드) 3곳, 크리스피크림 도넛(제과제빵) 2곳 등이다. SPC 그룹도 10곳의 점포를 차지하고 있다. 파리바게뜨(제과점) 6곳, 배스킨라빈스(아이스크림) 4곳 등이다. CJ그룹 계열도 눈에 띈다. 올리브영(헬스&뷰티 스토어 4곳), 뚜레쥬르(제과점) 3곳, VIPS(패밀리레스토랑) 1곳, 투썸플레이스(커피숍) 1곳 등이다.
이외 두산그룹 프랜차이즈 계열사 SRS코리아는 버거킹(3곳), KFC(2곳) 등 5곳의 패스트푸드점을 냈고, 신세계가 50% 지분을 가진 스타벅스(커피숍)는 3곳에 자리잡았다.
편의점 프랜차이즈 GS리테일은 미스터도넛(제과제빵)이라는 이름으로 동성로와 현대백화점에 진출했다.
◆끝없는 영역 파괴
대한민국 재벌들의 영역 파괴는 '끝'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지난 2007년 4월부터 2012년 1월 사이 15대 재벌의 계열사 수는 472개에서 802개로 69.9%나 증가했다.
특히 이들 재벌들의 계열사 확장은 제조업보다는 비제조'서비스업에 집중됐다. 경실련이 2007년 4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4년간 15대 재벌의 488개 신규편입 계열사들을 분석한 결과, 제조업은 전체의 25.8%에 그치고 나머지는 비제조'서비스업체였다.
업종별로는 건설'부동산'임대업이 86개사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전문'과학'기술'교육'사업지원 서비스업이 58개사, 출판'영상'방송통신'정보서비스업 57개사, 도매'소매업 48개사, 여행'운수'창고업 46개사, 전기'전자'통신기기 제조업이 23개사 순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재벌들은 서민 창업 비중이 높은 도'소매업과 부동산'임대업까지 무차별 진출, '골목상권'의 황소개구리가 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김봄이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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