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나는 21세기 실크로드] <제2부> 5. 역사도시 부하라의 자존심

입력 2012-05-02 07:13:25

발길 닿는 곳마다 2500년 역사의 숨결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부하라 시가지는 갈색으로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종교시설과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부하라 시가지는 갈색으로 고풍스러운 모습이다. 종교시설과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부하라 바자르 입구 길가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할머니들. 은퇴한 부하라의 노인들이 나무그늘 아래 모여 환담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원로를 존경하는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다. 둥근 지붕 형태로 건물을 지은 쇼핑센터
부하라 바자르 입구 길가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할머니들. 은퇴한 부하라의 노인들이 나무그늘 아래 모여 환담을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원로를 존경하는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다. 둥근 지붕 형태로 건물을 지은 쇼핑센터 '타키'. 그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이 몰려들었던 곳인데 지금도 다양한 상점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위에서부터)

멀고 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가는 실크로드의 거의 중간 부분에 우즈베키스탄이 자리 잡고 있다. 인근 중앙아시아 3국 중에서도 해외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온다. 왜냐하면 위대한 건축물이나 오랜 역사의 현장을 복구하고 천 년 세월이 흘렀어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하라 지역도 신이 만든 창조물로 불릴 정도로 이 나라의 보물로 존재하고 있다. 히바에서 버스를 타고 동북쪽을 향해 9시간을 달리면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나타나면서 역사 도시 부하라에 닿는다. 9세기 사만 왕조의 보호 아래 성직자, 과학자, 신학생, 그리고 많은 상인들이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교역의 십자로 역할을 하며 교통의 요충지가 됐다. 그러나 그 영화도 12세기 칭기즈칸에 의해 타격을 입었고 뒤이어 티무르 제국의 지배도 받았다.

수많은 이슬람 신학교와 수도원

수많은 이슬람 신학교와 수도원이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티무르가 멸망하고 난 후부터였다. 그때부터 중앙아시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슬람의 성지가 되었다. 옛 실크로드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거리 풍경들은 당시에 완성되었고 오늘날까지 거의 변함이 없다. 현재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는데 문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구시가지가 '역사지구'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부하라는 '성스러운 부하라', 즉 '부하라 샤리프'로 불리는데 산스크리트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중국 수'당 시대에는 안국(安國)으로 명명됐다.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동서 문명교류의 관문 구실을 하며 이슬람 세계 전체의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한 역사의 후광으로 '보통은 빛이 하늘에서 땅을 향해 비치지만 부하라에서는 빛이 땅에서 하늘로 올려 비친다'는 속담도 생겼다.

부하라는 기원전 4세기부터 시작돼 수많은 영욕을 거듭하면서 2천500여 년의 긴 역사를 켜켜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 유적이 존재하고 여러 인종이 섞여 살게 되었다. 기원전 329년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왕 다리우스 3세를 잡기 위해 부하라를 지나 사마르칸트까지 진출했다. 그는 그리스 병사 2만 명을 주둔군으로 남겨 저항에 대비했다. 지금도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라고 한다. 몽골 제국이 이곳을 장악한 역사도 길다. 1991년 독립하기 전까지는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왕의 사원으로 불리는 '모스크'를 둘러보다가 나무 그늘에 모여 환담하는 노인들을 만났다.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도 역정을 내지 않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응해 주었다. 실크로드 소그드 상인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인들이 앉은 자리에는 두툼하고 고급스러운 녹색의 큰 방석이 깔려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아직도 3대가 함께 사는 가부장적인 대가족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유목민의 전통이 이어져 가장 연장자인 할아버지는 가족 대표라는 의미로 '악사칼'이라 불리는 등 권위가 살아있다. 연장자의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되어 이어지고 있다. 원로를 존경하는 문화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다.

지하 20m까지 연대별 역사 유적

왕의 궁전이었던 아르크성의 성벽에 올라 파노라마로 펼쳐진 도시 전체를 둘러본다. 정교한 청록색의 타일로 장식된 히바의 건물들과 다르게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연한 갈색 톤으로 세월의 운치를 느끼게 한다. 지하 20m까지 연대별로 역사 유적이 잠들어 있다는 도시.수많은 드라마가 잠재되어 있는 현장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물이 보인다. 도심의 중심부 교차로에 자리 잡은 둥근 형태의 '타키'라는 건물이다. 타키는 둥근 지붕이라는 뜻으로 쇼핑센터의 역할을 한다. 실크로드의 교역도시였음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사방으로 통하는 길 위에 세워져 있어 어느 방향에서 오든 상점가를 지나도록 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는 상점과 대상들의 숙소, 대중목욕탕이 있다. 소그드 상인들이 활동했던 곳이며 유목민족의 삶의 애환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이다. 가운데 큰 문은 높게 만들어 낙타를 타고도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같은 장소에서 카펫, 공예품 등을 팔고 있다.

큰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부하라 시장으로 연결된다. 그 길가에는 우리나라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노점상 할머니들이 자리 잡고 있다. 천 년 이상 계속되어온 시장 풍경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이름값

본래의 실크로드는 물류 이동을 통해 부가가치를 살리는 길이었다. 대상들의 이동을 통해 문명과 신화, 과학과 기술을 전파하는 루트가 되었다. 시장은 중간 기착점이기도 하고 출발점이기도 했다. 상인들은 실트로드를 개척한 문명 전파자였고, 서로 다른 삶을 가진 세상을 이해하고 하나로 묶어준 위대한 선각자였다. 그들의 후손이 알라 신을 믿으며 모여 살고 있는 곳이 오늘의 부하라이다.

 

글·사진: 박순국

(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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