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책] 호모 폴리티쿠스

입력 2012-05-02 07:26:50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대표되는 인간의 학명 중 호모 폴리티쿠스는 정치를 통하여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種)의 이름을 정하기 위해서 이명법(二名法)이라는 종의 명명법을 고안했다. 속명(屬名)과 종명(種名)으로 구성되기에 이명법이다.

린네가 규정한 인간의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호모가 속명이고 사피엔스가 종명이다. 주지하다시피 생각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린네와 후학들의 연구에 의해서 현재까지 180만 종의 생명체가 학명을 갖고 있으나, 아직까지 학명이 없는 종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호모 사피엔스 이후 인간의 학명은 학자들의 학문적 견해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경제학자는 호모 에코노미쿠스(economicus:경제적 인간), 언어학자는 호모 로켄스(Loquens:언어적 인간), 생물학자는 호모 에렉투스(erectus:직립인간), 사회학자는 호모 루덴스(ludens:유희적 인간) 등.

호모 엑세쿠탄스(executans)는 이문열의 소설에 등장하는 그가 만든 인간의 학명이다. 엑세쿠탄스는 영어인 집행하다(execute)에서 나온 라틴어 합성어이다.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에 의해서 적이 된 상대를, 그들을 제거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그러니 호모 폴리티쿠스(politicus:정치적 인간)란 정치학자가 만든 인간의 학명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을 다른 민족에 비해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민족으로 분류한다. 선거가 있는 계절이 되면 전국 곳곳이 모두 정치판이 된다. 공원벤치에 모인 어르신도, 선술집에 모인 노동자도, 동창회에서 만난 동창들도, 심지어 잠시 탑승한 택시기사도 거침없이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 가도 정치적인 화두가 빠지지 않고 견해가 다른 사람끼리는 얼굴을 붉히며, 때에 따라서는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어 절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호모 폴리티쿠스의 성질이 강한 한국인일지라도 문제가 될 건 없다. 단지 애국심이 강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과 정치적인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측면이 있다면 곤란하다.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용인하지 않고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는 극좌나 극우 선동가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기 쉽기 때문이다. 극우로 선동한 독일의 나치스나 일본의 군국주의, 극좌의 북한이 그 사례이다.

이렇게 되면 영특한 국민마저 눈에 콩깍지를 쓰고 극단적인 한쪽을 향해서 질주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서로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며 공존(共存)하는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가 아쉬운 계절이다.

정재용/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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