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030세대는 '삼포세대'라는 단어로 정의된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 층을 뜻하는 신조어다. 한창 이성에 대해 관심이 넘쳐나고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어야 할 피 끓는 청춘들이 현실의 높은 장벽에 짓눌려 헉헉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치솟는 물가, 등록금, 취업난, 집값 등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스스로를 돌볼 여유도 없다고 푸념한다. 그래서 작가 목수정 씨는 '야성의 사랑학'이라는 책을 통해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연애기능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 이상 젊은 남성들은 마음에 드는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차 한잔 하실래요?"라는 용기있는 말 한마디 던지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영어 단어 외우고 스펙 쌓고 아르바이트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사랑도 조건 맞춰 하고, 그런 조건을 쉽게 얻을 수 있는 결혼정보업체와 온라인 소셜데이팅 업체만 성업중이다.
◆연애 본능마저 가로막는 팍팍한 사회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는 강주영(가명'26'여) 씨는 지금껏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해 본 경험이 없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비를 벌기 위해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그녀다. "한때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지만 그 역시 아르바이트로 바빴어요. 서로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하다 보니 당연히 만날 시간은 없고 서로 감정싸움만 하다 결국 헤어지길 몇 차례 반복하고 난 뒤 더 이상은 '연애'는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죠." 졸업하면 연애할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세상은 또 그의 바람을 무참히 저버렸다. 2년을 취업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그녀는 여전히 토익과 각종 자격증 준비에 시달려 다른 곳에는 눈 돌릴 여유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호영(가명'30) 씨는 취직을 했지만 그에게 연애는 여전히 '남의 일'로 치부될 뿐이다. 중소기업체에 다니는 그의 월급은 200만원 남짓. 이제는 결혼 준비를 서둘러야 할 나이가 됐지만 빠듯한 월급에 언제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친구와 하루 데이트를 하려면 적어도 5만원 이상의 돈이 지출되는데 어느 순간 '비용'이 부담되자 만나는 것 자체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자꾸만 피하게 되더라"며 "더구나 요즘 여자들은 워낙 경제력을 중시하다 보니 자꾸 초라한 내 모습이 서글퍼 맘에 드는 이성이 나타나도 고백도 못하고 애만 태우다 그냥 떠나보낸 적이 여러 번"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스스로를 '초식남'이라고 지칭하며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이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이 때문에 목수정 씨는 그의 책에서 연애를 가로막는 이유를 사회적 차원에서 조망한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위선적 도덕주의, 경쟁주의, 자본주의 팽창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한국 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쫓지 않느냐"는 화두를 던진 목 씨는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인 연애 충동마저 손상시켰다"며 "비정규직은 좀처럼 연애에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고, 연애는 모든 것을 양극화시키는 이 시대를 비껴가지 못하고 가진 자들의 특권이자 유희로 전락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소셜데이팅업체 이음(www.i-um.net)이 20, 30대 싱글 남녀 59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명 중 1명(18%)은 평생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모태 솔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설문에 참여한 23세 미만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5%가 모태 솔로라고 응답, 20대 초반 싱글들은 연애를 중요하게 여기는 데 비해 경험은 많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연애 여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51%가 지난 한 해 동안 한 번도 연애를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야성을 잃어버린 소심한 젊은이들
짝사랑만 계속하다 아직 연애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대학생 김무환(가명'24) 씨는 연애의 걸림돌로 '외모'를 꼽았다. 최근에 같은 과목 강의를 듣는 여학생 한 명이 그의 눈에 들어왔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고백도 못한 채 마음을 접고 말았다고 했다. 기껏해야 문자 몇 번, 카카오톡 몇 번으로 마음을 떠보다 지레 포기한 것이다. 김 씨는 "요즘처럼 외모지상주의가 판치고 꽃미남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나같이 못생긴 남자가 다가설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 같다"며 "괜히 너무 매달렸다가는 이상한 스토커로 오해를 받지 않을까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푸념했다.
'쿨'(cool)함을 강요하는 사회가 연애에 있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요즘 젊은 남성들은 열 번 찍는 일에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괜히 그랬다가 스토커나 이상한 남자쯤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을 일컬어 '유사 이래 가장 소심한 청년기'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공부'에만 매달렸을 뿐 자신의 삶의 뿌리를 형성하는 '철학'을 고민할 여유가 없이 살아오다 보니 정작 자신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용기도, 열정도 없는 세대가 됐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교육을 받지만 정작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용하는 면은 약하다.
영남대 사회학과 허창덕 교수는 "교육이 인간사회에서 제도로 정착했던 이유가 바로 사람에게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함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서는 부모들의 과보호가 판을 치면서 자생력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젊은이들이 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등의 철학적 고민을 할 시기에 학업에만 치여 살다 보니 삶의 뿌리가 약해져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일 등 많은 부분에 있어 사회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애는 온라인과 책에서 배워요
미디어 등을 통해 조성된 완벽한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보며 기대치가 자꾸 높아지는데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면서 조금의 불편함도 감내하기 싫어하는 성향 또한 젊은이들의 연애를 가로막는 요소다. 소셜데이팅 업체 '이츄'가 20세 이상 미혼남녀 531명(남성 279명, 여성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애를 방해하는 요인'에 대해 '마음에 드는 이성이 없다'(39.9%)는 이유가 1순위를 차지했다. 현실적인 문제보다 이상형에 대한 기대치 때문에 연애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어 연애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막막한 진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18.5%), '야근은 기본, 철야는 선택인 숨 가쁜 직장생활'(14.1%), '데이트 비용, 기념일 챙기기 등 경제적인 부담'도 빼놓을 수 없다고 답했다. 성별 차이를 보면 남성이 상대적으로 '데이트 비용 등 경제적 부담'(12.5%)이나 '이성에 대한 자신감 부족'(11.1%)을 든 반면 여성은 '연애라는 정서 노동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8.7%)는 의견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에 목말라하는 젊은이들은 결혼정보업체나 소셜데이팅 업체 등을 통한 '조건' 만남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등이 대중화하면서 소셜데이팅은 새로운 연애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용자들의 인적사항과 취미 등을 분석해 하루 1~3명의 이성을 온라인으로 소개해주는 것이다. 직업, 종교, 출신학교에서부터 취미, 관심사까지 세세하게 기록한 뒤 이를 분석해 잘 매칭되는 남녀를 소개시켜 주며, 서로의 실명과 연락처를 알기 위해서는 쌍방의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적을 뿐 아니라 실패에 대한 부담도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이다.
연애에 서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영화 '미스터 히치'나 '시라노: 연애조작단' 속에서나 볼 법한 연애 트레이너들도 현실에 등장할 정도다. 서점가에서는 남녀관계, 연애지침서가 인기다. 남성은 여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연애지침서를 찾고, 여성은 타인의 실패 사례와 남성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이런 책들을 구매한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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