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달라도 열정은 같다
2012 대구문화재단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에 선정된 강지영(피아노), 하지현(플루트), 이수미(성악) 씨를 만났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30대 중반, '음악'이라는 끈으로 묶인 이들은 공감대가 넓다.
화려한 차림으로 무대에 서는 음악가는 그 삶도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젊은 음악인들의 고민이다.
이들은 각각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에서 5~8년간 공부했다. 귀국 후 한국에서 5년 이상 활동하면서 한창 음악적으로 성숙해가고 있는 시기다. 이들은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한 달에 80만원의 지원비를 받게 된다.
혹자는 "음악인들에게 지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음악계를 잘 모르는 선입견과 오해에서 비롯된다.
이수미 씨는 IMF 외환위기와 겹치면서 힘겨운 유학생활을 했다. 독일 국립음대에 합격해 학비 걱정은 없었지만 나머지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해야 했다. 강지영, 하지현 씨도 마찬가지. 긴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정규직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레슨 등으로 각자 알아서 생활해야 한다. 공연을 다녀도 금전적으로 남는 건 많지 않다.
"제가 연평균 전국 10개 이상의 공연을 해요. 연주 무대에 서는 것은 늘 행복하고 좋지만 오페라 하나에 2, 3달의 제작 기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런티보다 오가며 쓰는 돈이 더 많죠. 일은 열심히 하는데 통장은 늘 마이너스예요."
이수미 씨는 그나마 경쟁이 덜한 메조소프라노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편이다.
공연을 공짜로 보는 데 익숙해진 관객들은 티켓을 잘 구입하지 않는다. 그것도 지역 음악인이라고 하면 실력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아예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것. "귀국독주회 빼고는 매년 유료 공연을 하고 있어요. 힘들지만 그래야 책임감이 생기거든요. 청중들도 성숙한 관람의식이 생겨날 테고요." 그래서 하지현 씨는 연주회 비용이 많이 든다.
한길로 달려왔지만 무대에 서는 것은 늘 쉽지 않다. 연주의 수준뿐만 아니라 청중의 수와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 "매년 독주회를 하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음악인은 화려해 보이는 선입견 때문에 손 내밀기도 쉽지 않죠."
연주 기량 향상에 몰두하기 위해선 레슨을 많이 할 수 없다. 레슨도 기복이 심하다 보니, 음악인들은 수입이 일정치 않다. "저는 돈을 받고 연주 무대에 선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어요. 오히려 돈을 내고 연주를 해야했죠." 강지영 씨의 말이다.
'서울', '외국'의 음악인을 우대하는 풍토도 음악인들에겐 상처다. 국제적인 콩쿠르에서 큰 상을 받은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강 씨는 지역 관련 이력은 오히려 숨겨야 한다고 고백한다. "지역의 한 대학을 다니다가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다녔는데, 수도권에서 원서를 낼 때는 지역대학 이력을 절대 쓰면 안된다는 불문율이 있어요. 지역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은근히 실력마저 폄훼하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협연자들을 무조건 서울에서 활동하는 해외파 연주자를 불러오는 풍토도 고쳐졌으면 한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젊은 음악인들은 열정 하나로 버티고 있다. 거친 들판 같은 사회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열정만이 버팀목이 된다.
젊은 여성 음악인들에게 '결혼'도 하나의 고민거리. "유학까지 다녀오며 열심히 청춘을 바쳤는데, 결혼과 함께 음악생활이 끝날 수도 있어요. 그런 경우를 많이 봤고요. 그래서 결혼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은 예민하기 때문에 한번 쉬면 곤두박질친다. 요즘은 해외 유학은 필수코스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다. 젊고 실력있는 후배들이 언제든 치고 올라올 수 있어 잠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다. "매순간 긴장하고 있어야 해요. 컨디션 유지를 위해서도 긴장이 필요하죠. 그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엄청나요."
젊은 음악인들은 '지역'이라는 틀에 국한시키지 않고 실력과 열정으로 자신들을 평가해줬으면 한다. 열정을 간직한 젊은 음악인들을 선배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은 노하우로 네트워크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 선정은 어떤 의미일까.
하 씨는 "이 기간 활발한 연주 활동으로 제 인생의 정점을 찍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30대인 지금은 깊이 있는 음악과 기량, 음악성에 있어 최고가 될 수 있는 시기예요."
강 씨는 이번을 계기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연주한다는 큰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실행한 음악인은 전국에도 몇 명 안된다. "제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자신과 약속했어요. 독주회를 10회 이상 해야 할 정도로 많은 분량이지만 큰 도전이 됩니다."
메조소프라노 이 씨의 꿈도 크다. "기회가 언제든 왔을 때 멋진 카르멘으로 데뷔하는 것, 그것이 제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겠죠?"
'열심히 연주하는 사람들이 신진예술가 지원 사업에 선정됐구나' 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 세 명 젊은 음악인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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