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 스마트폰 적응기/행복이란?/봄 마중/반백년 살다 보니/진달래꽃

입력 2012-04-27 07:37:54

♥수필1-스마트폰 적응기

"부재중 전화가 왔던데요. 누구십니까?" 망설이며 엉거주춤 대답을 했다.

"죄송해요. 스마트폰을 잘못 만졌습니다." 휴대폰을 바꾸고 처음 한 실수로 당황해 진땀이 배어 나왔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벨 소리가 또 울렸다. 잠시 주춤거리고서야 까만 화면에 생명을 넣어, 간신히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여보 친구랑 차 한 잔 마시고 갈게, 그렇게 알고 있어." 주말 저녁 친구를 만난다는 남편의 전화, 내려놓은 휴대폰에서 낯선 화면과 함께 남편의 목소리가 또 들렸다. 분명히 남편이 전화를 끊었다는 기억에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전화기에 당구장 점수대가 보이고 친구들과 편하게 게임을 하는 남편 목소리가 웃음과 주변 소리와 함께 들렸다.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거짓말이 금방 들통난 것도 모르고 마음 놓고 게임을 즐길 남편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거짓말을 한 남편이여, 오늘밤을 기대하시라.

유행하는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꿔 잘못된 조작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내 휴대폰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휴대폰이 또 울렸다. 조금 전 통화한 친구였다. 영상폰으로 화면이 바뀌며 타일이 붙은 벽면이 보였다. "여보세요"라는 말에 대답이 없어, 이름을 부르자 소리를 듣고 친구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친구가 일어나 맨살이 드러난 궁둥이 옆쪽을 보이며 빨간 팬티를 올렸다.

"나 통화버튼도 안 눌렀는데, 벨도 안 울렸는데, 왜 전화기에서 네 목소리가 들리냐?"

"네가 영상통화로 화장실을 생중계하고 있잖아!"

친구는 웃으며 멋쩍어했다.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조심을 경고한 것이다.

"전화 단속 잘해야겠다. 큰일 나겠데이! 하하하" 스마트폰으로 인한 에피소드에 종결의미를 찍었길 간절히 바란다.

이재경(대구 남구 봉덕3동)

♥수필2-행복이란?

지난주말 온 가족이 모여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했다. 겨우내 쌓인 필요 없는 물건들과 쓰레기들을 버리고 깨끗이 청소를 했다. 대청소가 마무리되어 갈 무렵, 집 담장 밖에 내놓았던 박스 몇 개와 폐지들을 주섬주섬 챙기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나는 또 하나의 박스를 내놓으며 "할머니, 이것도 필요하시면 제가 정리해 드릴 게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러자 얼굴에 온통 주름이 자글자글하신 할머니께서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고맙다고 하셨다. "오늘 날씨가 좋아서 산에 쑥 캐러 가는 길인데 이 박스들이 보이네. 아이고, 이걸 그냥 못 지나치겠지 뭐야. 요거 그래도 몇 달 모으면 우리 손주들 용돈 두둑이 챙겨줄 수 있다니깐"이라고 하시며 수줍게 웃으신다. 여기저기 다니며 박스들을 챙겨 푼돈을 모아 주머니에 꼬깃꼬깃 넣어둔 종이돈들을 꺼내놓는 날이면 얼마나 행복하실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손주들은 아마 할머니 목을 꼭 끌어안으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볼에 뽀뽀를 해 드릴 것이다.

행복이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수만금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도, 나라님 같은 권세를 가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어쩌면 잊고 살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부정한 허리를 연신 두드리며 박스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정리해나가는 그 자그마한 손길 위에, 봄 햇살로 반짝이는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 위에, 길가에 피어난 노란 작은 꽃을 발견하고 살짝 짓는 미소 위에 행복은 살포시 내려앉는다.

오늘도 운 좋게 용돈을 벌게 되어 고맙다고 연신 웃으시며 발길을 재촉하는 할머니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 발걸음 따라 행복이 찰찰찰 길 위에 흩뿌려지는 광경이 보인다. 등 뒤로 보이는 그 미소만큼이나 봄볕이 따스하다.

강민희(경주시 용강동)

♥시1-봄 마중

햇살이 이렇게 고운 날이면

버들가지 피어나는

저 들판 너머 강가로 가요.

아지랑이처럼 파릇파릇 싹터오는

연둣빛 그리움일랑

흐르는 세월의 강에 띄워놓고

알 수 없이 가슴이 허전하고

외로운 날이면

우리 같이 봄마중 가요.

양지바른 곳에 도란도란 들꽃 향기

그대 가슴에

한 아름 가득 채워주고 싶소.

이문익(대구시 달서구 감삼동)

♥시2-반백년 살다 보니

반백년 살다 보니 뒤돌아보아지네

무엇을 덜해 놓고 이만치 왔나 싶네

왔던 길 후회스럽고 나아갈 길 무섭네

이유가 무엇일까? 왜 이리 초조한지!

곰곰이 생각하니 사춘기 막내둥이

무작정 짜증만 내니 자식교육 버겁네

어느덧 꽃은 지고 초록 잎 무성하니

봄날이 지나가듯 반백년 금방이네

아비가 더 늙기 전에 철들기만 바랄 뿐.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시3-진달래꽃

봄 마중 물소리에 잠을 깨는 선녀로다

열아홉 고운 아씨 앙가슴 예쁘구나

산 오름 꽃동손에서 방실방실 웃는다

꽃바람 등에 지고 달빛에 피어나니

삼천리 고운나라 임으로 아름답다

모든 이 사랑하나니 반겨 맞은 은자여

하늘을 우러르며 예쁘게 웃음짓네

내리는 사랑받아 즐거워 노래하니

어디서 날아 들었나 나비함께 춤춘다

박효준(대구 달서구 송현2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김용현(고령군 고령읍 연조리)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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