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성구 팔현마을은 농촌이면서 여름마다 물난리로 농사를 망치곤 했다. 도시이면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여 개발도 못했고 교통도 열악했다. 행정구역상 도시이면서도 도시다운 혜택을 받지 못했고, 주업이 농사지만 농촌다운 환경도 갖추지 못했다. 수성구 끝자락 금호강변 도시 속의 농촌마을. '비내리는 고모령' 고갯길 옆 팔현마을은 도시와 농촌 사이 이도 저도 아닌 찬밥신세였다.
그 팔현마을이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해마다 근심이었던 물난리가 없어져 농사도 생활도 안전한 삶터로 거듭났다. 시내로 통하는 도로가 뚫리면서 농촌체험을 하려고 시내 사람들이 찾아오고 패밀리파크에는 소풍 온 가족들이 넘쳐난다. 마을기업을 차려 수익사업도 벌이고 주민들의 일자리도 만들어냈다. 특산품인 고산 '도래샘미나리'는 그야말로 대박 상품이 되었다. 도시에서 소외된 농촌이 아니라 도시의 사랑을 받는 푸른 보석이 된 것이다.
변화의 시작은 팔현마을 주민들의 의지였다. 상습침수지역과 그린벨트 족쇄에 묶여 불안하고 소외된 자신들의 삶터를 바꾸기 위해 주민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주민들은 조직된 힘으로 시내로 오가는 도로를 얻어내고 마을 주변 길도 넓혔다. 해마다 거듭되던 침수피해를 없애기 위해 행정기관에 끈질긴 요구로 빗물펌프장을 만들어냈다. 금호강 정비사업과 함께 물난리 걱정이 없게 됐다.
그린벨트로 묶인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유지되어온 생태환경은 거꾸로 팔현마을의 경쟁력이 되었다. 강변에 철새 관찰대가 세워지고 야생 동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관광객이나 생태학습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천연자원이 된 것이다. 작년에는 고산 지역의 명소가 될 공원 하나가 팔현마을 바로 옆 금호강변에 만들어졌다. 가족단위 피크닉장으로 안성맞춤인 패밀리파크가 들어선 것이다. 그린벨트로 묶인 땅을 정부가 사들여 나무와 잔디를 심고 산책로, 물놀이장, 스포츠공간을 조성했다. 외진 곳이라 사람들이 올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개장과 동시에 시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소풍을 오기 시작했고, 어느덧 대구시민들의 가족나들이 장소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생존의지로 환경을 바꾼 팔현마을 주민들에게 성장 의욕과 자신감이 생겼다. 농가소득을 늘리기 위해 마을 부녀회원들이 주축이 돼 마을기업을 만들었다. 포도 복숭아 자두 사과 등 '자기 과일나무' 분양사업, 과일따기 체험사업, 보리쌀 밀가루 김장배추 재배 및 판매사업 등이 주된 사업 영역이다. 얼마 후면 인근에 말 사육장이 생긴다고 하니 승마체험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청정미나리 사업이다. 고산지역에 있는 옛우물 이름을 따서 '도래샘미나리'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는데 현재 미나리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팔현마을의 변화 과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수성구의 해피타운이 어우러진 것이다. 이름과 시대는 달라도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성장동력을 만들어 삶의 질을 높이자는 정책이 담긴 것이다.
또 주어진 여건에 좌절하지 않고 더 깊이 파고들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승화시킨 발전과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수성구에서는 팔현마을뿐만 아니라 진밭골 청소년수련원 건립과 표고버섯 마을기업 육성, 성동마을 고산서원 일대 복원과 포도즙 생산가공 마을기업 등도 성장동력과 수익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만촌동의 두 마을에서도 해피타운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이는 재건축 재개발을 기대하기 힘든 단독주택지나 농촌 정주환경 개선정책이다.
단독주택 지역도 살기 좋은 행복한 마을로 변화될 수 있어야 도시 내의 양극화 현상도 해소될 수 있다. 따뜻한 자본주의로 양극화를 넘어서자는 '자본주의 4.0' 이론이 공감을 얻고 있지만 모든 지역공동체의 동반성장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 변화하려는 지역민의 의지와 사려 깊고 따뜻한 정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안전, 환경, 복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모범답안을 보여준 팔현마을에서 서울의 마을공동체보다 앞선 수성구 해피타운의 미래를 본다.
이진훈/대구 수성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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