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10대] <하>性에 일찍 눈 뜨는 아이들

입력 2012-04-24 10:26:50

"사후피임약 주세요" 구입자 40%가 10대

성에 일찍 눈뜬 10대들이 한순간의 일탈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는 경우가 잦다. 23일 대구시내 약국에서 10대 한 쌍이 약사와 상담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성에 일찍 눈뜬 10대들이 한순간의 일탈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맞는 경우가 잦다. 23일 대구시내 약국에서 10대 한 쌍이 약사와 상담하고 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K(19) 양은 두 살 위 남자친구와 사귄 지 두 달 만에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자친구는 도망치듯 입대해버렸고 결국 K양은 고교를 자퇴한 뒤 대구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너무 쉽게 성관계를 생각했어요.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고, 경제적 도움도 받지 못해 정말 힘들고 괴로워요."

청소년들의 이성 교제가 확산되고 성에 대한 노출이 심해지면서 성경험을 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조사한 '2011년 청소년 성경험실태'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최초 성경험 연령은 2009년 15.6세에서 지난해 14.6세로 낮아졌다. 첫 성관계 경험 대상은 '이성친구'가 70.4%로 가장 많았고 '서로 원해서' 관계를 맺었다는 비율도 72.5%나 됐다.

대구의 한 고교 1학년인 H(17) 양은 "중3 때 학원에서 알고 지내던 고교생 오빠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털어놨다. 요즘도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이따금 성관계를 맺곤 한다는 것. 친구들과도 성관계에 대한 대화를 거리낌 없이 나눈다고도 했다. 다만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털어놓지 않을 뿐이다.

H양은 "왜 청소년은 성관계를 가지면 안 되느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영화나 TV를 보면 여성들도 대담하고 당당하게 관계를 맺잖아요. 피임도구 잘 써서 임신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남학생들은 성경험을 또래 집단 사이에서 우월감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고교 2학년인 최모(18) 군은 "어른들의 행동을 미리 경험하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며 "예전에는 흡연이나 음주, 오토바이 등이 우월감의 척도였지만 요즘은 성경험을 털어놓으며 으스댄다"고 말했다.

미혼모시설인 대구혜림원 관계자는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이 또래 이성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게 되고 성관계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인다"고 지적했다.

청소년들의 성경험이 늘면서 사후피임약을 찾는 10대들도 늘고 있다. 특히 대학가나 중구 동성로 등 유흥가 주변 약국에는 사후피임약을 사려는 청소년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게 약사들의 얘기다.

동성로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사후피임약을 구입하는 이들 중 30~40%가 10대 청소년"이라며 "최근 2, 3년 사이에 사후피임약을 찾는 청소년의 수가 3배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에 겪는 이른 성경험은 정상적인 신체 발육과정을 방해하고, 호르몬 변화로 체중 증가뿐만 아니라 흡연, 음주, 가출, 자살 등의 여러 문제 행동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하지만 청소년들에 대한 성교육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학교에선 연간 10회의 성교육이 배정돼 있지만 생물학적 지식만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전문 강사도 성폭력 예방 교육에 주력한다는 것.

대구청소년성문화센터 이자리 센터장은 "성교육 전문 기관이 청소년 성교육을 도맡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학교 차원에서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성현'황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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