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맛있게 먹기] 창작초연작의 의미

입력 2012-04-19 14:32:00

"새로운 작품의 신선함 고려…관객의 관심과 격려 중요"

연극의 제작과정과 대본작업 편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한 편의 연극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작업 중 하나는 작품 선정이다. 그런데 이때 기존에 공연된 적이 있는 한국작품이나 외국작품 중에서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존재하는 기존 작품에 새로운 해석을 가미해 각색한 작품이거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공연한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후자의 경우를 창작초연작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대본을 새로 창작해서 사상 처음으로 공연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이나 '리어왕' 등도 처음엔 창작초연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는 그의 작품들을 흔히 '고전'이라고들 부른다. 단순히 오래된 작품이라고 해서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작품성이라고 부르는 작품의 우수성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아직까지도 여전히 끊이지 않고 무대에 오르게 만들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수많은 고전들도 창작초연이 이루어질 당대에는 연극의 작품성과 흥행성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성공 여부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작품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니만큼 관객과 평단의 반응을 미리 확인할 수 없어 작가, 연출가, 배우, 제작자 등은 엄청나게 초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창작초연을 포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은 고전이라고 말하는 작품들이 걸어온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말한 과정을 겪은 모든 작품들이 고전이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창작초연 이후에 계속해서 수정과 보완을 하고 다시 검증받는 일을 수차례 반복하는 등의 고통스러운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살아남게 되는 아주 극소수의 작품만이 고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은 작품들도 다시 더 긴 시간이 흐르게 되면 마치 현재의 가요대회나 퀴즈대회 왕중왕전처럼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진정한 고전의 이름을 놓고 다시 승부를 펼치게 된다. 물론 그 승부라는 것이 실제 연극경연대회나 평가대회 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의 메시지와 관객의 사랑 등으로 대변되는 작품의 생명력이야말로 그 승부의 기준이며, 그 모든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살아남은 작품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창작초연작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고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전의 첫걸음이다.

그러나 오늘날 창작초연작이 가지는 의미는 조금 다르다. 몇몇 연극제작진은 각종 연극 지원금 공모사업에 신청하기 위해 별 고민도 없이 창작초연작을 선택하곤 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창작초연작만이 공모대상이거나 창작초연작에만 가산점을 주는 지원금 공모사업이 많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사실 창작초연작을 우선 선정대상으로 하는 지원금 공모사업의 본래 목적은 창작초연작을 키워 우리의 정체성과 시대성을 담아낸 고전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극단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창작초연작은 자기 극단과 구성원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인기 레퍼토리로 만들어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창작초연작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연극제작진 개개인의 실력향상이라는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창작초연작은 장점보다 더 많은 단점과 불안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장점이 지니고 있는 명분과 의미 때문에 각종 지원금 공모사업에서 우선 선정대상이나 가산점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물론 이 문제를 떠나서 새로운 것을 향한 시도가 예술가의 자세이자 정신임에 동의한다면 결코 창작초연작에 대한 시도를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창작초연작은 검증되지 않아 불안하다는 단점을 생각하기보다는 새로운 작품이어서 신선하다는 장점을 먼저 생각하고, 제작진과 관객이 작품과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비록 부족하더라도 수정하고 보완해서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도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과정에서 연극제작진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아닌 관객이다. 관객의 관심과 격려야말로 창작초연작을 고전으로 만들 수 있는 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희철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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