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신토불이(身土不異)

입력 2012-04-17 07:59:13

프랑스 파리 외곽에 '길상사'라는 작은 한국 사찰이 있다. 예전에 도반(道伴) 스님이 주지를 하고 있어 얼마간의 시간을 머물러 지냈다. 외국에 있는 한국 사찰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스님이 직접 공양(供養'식사)을 해결한다. 둘이서 돌아가며 공양 당번을 하면서 지냈는데 아침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채소 샐러드였다. 채소와 올리브오일, 통후추, 소금만으로 훌륭한 음식이 되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늘 아쉬운 것은 채소의 씹는 맛이었다.

필자가 장기간 외국에서 지내고 있을 때, 가끔 한국으로 돌아와서 공항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물맛부터 감탄사가 나왔다. 그 다음은 채소의 씹는 맛이다. 한국의 물에서 느끼는 기운은 필자가 경험한 그 어느 나라의 물보다 힘차게 다가왔다. 또한 너무 무르지도 않고 질기지도 않은 채소의 질감이 필자가 한국 사람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변해 주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불교도가 아니어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불교 지명(地名) 중에 사위성(舍衛城) '기원정사'라는 곳이 있다. 지금은 아주 궁벽한 시골이지만 부처님 당시에는 인도에서 가장 번성한 나라의 하나인 꼬살라 왕국의 수도(首都)가 있던 곳이고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지내셨으며 가장 많은 경전을 설하신 곳이다. 기원정사 유적지의 나무 아래에 앉아 1년을 지내고 살았는데 제일 힘든 것은 역시 음식이었다. 물론 필자는 그 누구보다 음식에 관한 트러블이 적은 사람이라고 자부하지만 몇 개월 만에 한국 채소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그래서 인편으로 한국의 배추, 무, 상추 씨앗을 전해 받아 마당 한 곳에 채전(菜田)을 일구었다. 기후가 달라 완전한 한국 채소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무엇보다 맛있게 먹으며 지냈다.

봄이 되었기에 인오선원의 작은 텃밭에도 채소를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씨앗의 원산지가 한국이 아닌 것이 너무 많다. 물론 21세기를 살면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길러왔고 먹어왔던 채소들의 씨앗조차 수입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이라 생각된다.

현대는 종자(種子)전쟁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은 나라들이 종자 특허에 엄청난 투자와 기술개발을 하고 있다. 종자를 개발하고 특허를 받아서 벌어들이는 로열티가 천문학적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종자개발과 특허가 계속된다면 식량의 종속(從屬)이라는 새로운 식민지 시대가 다가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무엇을 먹고사느냐는 문화적인 측면으로도, 육체적'정신적 건강 측면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식생활 습관에 따라 골격과 얼굴의 형태가 바뀌고 정서적인 변화가 있다. 한국적인 것이 반드시 세계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자라난 음식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음식을 대하면서도 참 많은 번뇌가 일어나는 때에 살고 있다.

대연 스님 인오선원 선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