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백일장] 봄을 파는 할머니들/마흔 살, 감기에 걸려보자/그리움과 비

입력 2012-04-13 07:03:07

봄을 파는 할머니들
봄을 파는 할머니들

♥수필1-봄을 파는 할머니들(사진)

고생스러운 등산을 끝내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문득 상큼한 봄나물이 생각나 할머니들이 펼친 노점을 찾았다. 저만치 양지바른 담벼락 밑 자리에 할머니 세 분이 나란히 앉아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다.

냉이를 다듬는 할머니, 쑥을 다듬는 할머니와 은행을 까는 할머니의 손은 지금껏 자식들을 키워온 세월 속에 옹이가 박힌 나뭇가지마냥 손톱 밑은 까맣고 억세고 투박하다. "할머니 이 냉이는 얼마예요?"하고 묻자 "응 이거 이천원!"하고는 덧붙이는 말로 깨끗이 손질해서 그냥 물에 설렁설렁 헹구어 된장에 넣어 먹으면 금방 캔 봄나물이라 향이 그만이란다. 아마 날도 저물어 파장이 가까운 가운데 찾아든 손님이 고마운지 덤으로 한 줌 더 얹어 준단다. 냉큼 돈을 지불하고 비닐봉지 하나를 받아들고 옆을 보니까 널찍한 쟁반 가득 일일이 손으로 깐 은행이 보인다. "이건 장모님이 좋아하시는 건데." 결국 은행 만원어치를 사들고 돌아서는 찰나 마지막 할머니가 "나~! 이 쑥 천원어치만 팔아줘!" 아침나절 잔돈 삼천원이 생긴 걸 다른 호주머니에 넣은걸 까맣게 잊어버리곤 지갑만 보고는 잔돈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자 혼자만 못 팔았다 싶어 못내 섭섭했는지 만원짜리도 바꿔 줄 테니까 꼭 좀 사달라는 하소연 끝에 애처로운 눈길까지 보내온다. 어떻게 한다.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잠시 머뭇거린다.

그렇게 많은 시간은 아니었다. 어느새 맨 처음 냉이 이천원어치를 판 할머니가 쑥을 팔려는 할머니에게 다가가더니 자신이 살 테니 그 쑥 천원어치를 팔란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농촌 인심인 모양이다. "아이고 형님! 형님이 쑥은 사서 뭘 하게!" 뜬금없는 요구에 손사래까지 쳐가며 만류하는 할머니. 하지만 이웃동생의 기분을 풀어주려는지 쑥을 사야겠다고 작심을 한 할머니의 고집도 어지간한지 요지부동 물러서질 않는다. 결국 보다 못한 내가 중재에 나서기로 작정, 냉큼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끄집어내어 "할머니 내가 그 쑥을 살 테니 할머니들 사진 한 장 찍읍시다"하고 제안을 하자 "다 늙은 할망구는 찍어서 뭣에 쓰게"하고 쑥스러워 하는 것도 잠시 사진이야 찍든 말든 연신 대화 중에 환하게 웃는다. 비록 얼마 안 되는 벌이지만 봄을 파는 할머니의 머리 위로 내리는 봄 햇살이 조곤조곤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따사로운 날이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중동)

♥수필2-마흔 살, 감기에 걸려보자.

지금 읽고 있는 책이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이다. 마흔은 어떤 세대일까? 마흔 가지의 책임으로 홀가분하지도 않고 즐거움에 빠져 있을 수만도 없는 또 성공했으니 쉬겠다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세대다. 이제 막 인생의 한복판을 지나려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와 열정을 쏟으며 30대를 보냈다.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올랐지만 삶은 행복하다는 느낌을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이룬 것보다 씀씀이는 더욱 커져 아무리 채워도 쌓이는 것은 고사하고 언제나 부족함에 목말라 한다. 아내는 애들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하고 싶단다. 애들은 자기반에서 주공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혼자뿐이라며 우리 집은 왜 가난하냐고 푸념이다.

계속해서 당할 수만 없어 반격을 시도해 본다. "이놈아, 아버지는 촌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학원문턱에도 가보지 못했어도 토목기사1급을 땄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지 주변을 탓하여 너에게 무엇이 돌아오겠냐?"하면 아버지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모두 자기 방으로 간다.

나이만큼 많아진 의무감과 감당해야 할 책임감들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을 만들어 냈다. 마흔의 인생살이는 감기에 걸린 것과 같다. 열은 오르내리고 눈은 충혈되어 눈물이 나기도 한다. 체력은 떨어져 몸은 이곳저곳 쑤셔온다. 쉬고 싶어도 감기에 걸렸다고 입원할 수도 없고 병가를 내기도 민망해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하는 사람이 마흔의 모습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인생의 짐들이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을 더 힘겹게 만든 것이다.

마흔을 사는 사람들이여 이제 색다른 감기에 걸려보자. '감사와 기쁨'의 감기로 사소하고 일상적인 생활에 감사하고 작은 성과에도 기뻐하며 나 자신을 부추겨 볼 일이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만 살피며 살아온 마흔. 이제 내 마음을 가꾸고 돌보자. 나의 마음이 건강해질 때 내 인생도 거뜬하게 감당할 수 있고 가족들과도 희망찬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흔, 오늘부터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감기에 빠져보자.

허이주(대구 달서구 성지로)

♥시1-그리움과 비

올 봄 그리움은

바람과 비처럼

수시로 다가왔다

봄 날 아침

먹구름에 폭풍우 쏟는 날

그리움도 그렇게 질펀하게

쏟아져 내렸다

낮은 먹구름

세차게 비로 쏟아내면

맑은 하늘이 보이듯

사랑도 다시 그렇게 오는 것이라면

올 봄

잦은 비가 내려도 좋겠다.

아니, 더 자주 내렸으면 싶다

바람아, 비야

더 세차게 때려라

그래야 그리움이다

김영석(청도군 이서면 가금 2길)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서혜정(대구 중구 대신동)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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